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20일 전화 통화에서 조기 정상회담에 합의함에 따라 한미 관계와 대북 정책을 위한 양국의 호흡 맞추기가 본격적으로 이뤄질 전망이다.두 지도자는 노 당선자의 취임 후 가급적 이른 시일 내 워싱턴에서 만나기로 합의해 첫 대면은 이르면 내년 2월 말 또는 3월 중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의 이라크 전 개전 시기와 맞물려 일정의 완급이 조정될 여지는 크다.
부시 정부가 한국의 새 정부와의 조기 회담을 제의한 것은 한미 동맹의 틀 속에서 보폭을 맞춰야 할 현안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북한 핵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당장 조율이 시급할 뿐 아니라 향후 양국 관계의 풍향을 결정할 중요한 의제이기도 하다. 핵 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의 지속을 강조하는 신 정부와 압박책을 우선하는 부시 정부가 대북 정책에서 접점을 찾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또 한미방위조약 체결 5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보다 대등하고 성숙한 관계 설정을 요구하는 한국민들의 기대가 어느 정도 충족될지도 관심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22일 "부시 대통령은 한국을 유순한 고객으로 치부하는 데서 벗어나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직시해야 한다"며 "노 당선자도 자신이 당선된 민주적 환경을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과 입장을 맞춰나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해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측은 정상회담 전까지 입장 차를 좁히는 데 최대한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이를 위해 주미 한국 대사관과 주한 미 대사관 등 공식 외교 채널의 가동뿐 아니라 비공식 인사 교류가 활발해질 전망이다. 특히 회담 전 두 지도자의 의중을 전할 특사가 오고 가면서 정상회담 후 발표할 합의문의 윤곽을 그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아시아 순방을 겸해 한국을 방문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노 당선자측도 대북 정책 등에 대한 검토가 끝나는 대로 거물급 인사를 미국에 파견할 것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미 정부는 노 당선자가 외교 경험이 없고, 미국을 한번도 방문하지 않았다는 점 등은 한미 관계에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그러나 워싱턴과 서울 사이에 최소한의 상징적인 거리를 두겠다는 노 당선자의 공약 등에서 미 정부 관계자들이 편치 않은 구석을 발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 같은 점을 들어 워싱턴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노 당선자가 외교팀을 어떤 색깔로 짜느냐가 향후 한미 관계를 저울질하는 기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또 한국의 신정부는 대북 정책을 논의할 준비가 안 된 부시 정부와 회담을 강행, 실패로 돌아갔던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지난해 3월 정상회담에서 교훈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하고 있다.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 대사는"두 지도자가 만나는 것 자체보다는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하다"며 "한국의 신정부가 건실한 외교팀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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