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가 재벌개혁 의지를 강하게 밝혀 향후 재벌정책의 전개방향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노 당선자측의 재벌정책 공약 내용은 몇몇 사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현 정부의 정책을 유지 또는 다소 강화하는 수준이어서 일단 정책의 뼈대에 근본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노 당선자측 경제정책을 자문하고 있는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현 정부가 추진해 온 재벌개혁 3대 원칙이 기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약과 관련해 우선 귀추가 주목되는 것은 상호출자금지 대상 기업집단의 확대이다. 현재 자산총액 2조원 이상 기업집단에 한정되어 있는 출자금지대상이 하향 조정돼 궁극적으로 모든 기업집단으로 확대될 공산이 크다. 출자총액제한제도도 최소한 불합리한 재벌체제가 개선될 때까지 유지되고, 경우에 따라 추가로 강화될 가능성마저 있다.
재벌 부당내부거래 조사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제한적으로 사법경찰권을 주는 방안도 공약한 대로 본격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기업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 강화를 위해 증권관련 집단소송제의 조기 도입이 추진된다. 또한 상장법인의 사외이사 선임 비율 확대, 외부감사인 선임위원회 설치 의무화, 주주대표소송 요건 완화 등도 점진적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재벌의 금융기관 지배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당선자측은 재벌의 은행 소유(경영권 지배)를 금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재벌의 금융기관 사(私)금고화를 막기 위해 '금융회사 계열분리 청구제'를 도입하겠다는 공약이 이와 관련 눈길을 끈다. 재벌의 부당행위가 반복될 경우 계열분리를 법원에 청구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다. 생보사, 투신사 등 기관투자가의 계열사 보유지분 의결권 행사도 다시 제한하는 방향으로 검토되고 있다.
상속·증여세의 완전포괄과세 도입도 재벌을 긴장시키는 사안이다. 전환사채 등을 이용한 변칙적인 상속·증여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김대환 인하대 교수는 "재벌시스템의 개혁은 지속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재계와 정치권, 전문가들의 다양한 의견을 조율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재계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철기자 sckim@hk.co.kr
■"7% 高성장 숫자에 집착말라"
새 정부 5년간 과연 연간 7%의 '신(新) 성장' 가도를 달릴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 당선자의 핵심 경제 공약 중 하나인 '7% 경제성장론'이 대선 이후 주요 이슈로 부각되며 공방을 낳고 있다. 언뜻 성장률은 높으면 높을수록 좋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과도한 성장은 인플레이션이나 분배구조 왜곡 등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7% 성장 실현 가능할까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은 우리나라의 향후 10년간 잠재성장률을 5%대 초반으로 전망한다. 잠재성장률이란 한 나라의 경제가 노동, 자본 등 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
노 당선자의 '7% 성장' 공약도 단순히 연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끌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잠재성장률을 7%까지 끌어올리겠다는 취지다. 북방 특수를 포함한 동북아 특수 등 신규 시장 개척, 여성 노동력 공급 확대, 시장의 효율성 제고, 사회적 갈등 비용 극소화 등으로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확충하겠다는 것.
전문가들은 잠재성장률 7% 달성의 목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실현 가능성이 높지는 않을 것으로 평가한다.
▶무리한 고성장 화를 부른다
경제 관료나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대목은 7% 성장에 집착해 무리하게 경기를 부양할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이다. 실제 잠재성장률은 여전히 5%대에 머무는데 7%로 오판해 경제를 운용할 경우 경기 과열과 인플레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관계자는 "수치에 연연하지 말고 장기적인 경제 성장을 견인할 수 있는 기반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 당선자가 대선 후 첫 기자 회견에서 '7% 성장론'에 대한 언급 없이 "경기 정책은 전문팀에게 맡기겠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주변의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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