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마다 수학·물리학·화학·생물학·컴퓨터공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들이 골몰하는 주제는 단백질 3차원 입체구조. 단백질의 아미노산 서열만 보고 어떤 모양일지를 예측하는 단백질 구조예측 학술대회(CASP)다.이달 초 미국에서 열린 제5회 CASP에 고등과학원 이주영 교수팀이 처음 참가, 새로운 접힘 예측 분야에서 165개팀 중 18위에 올랐다. 미국 팀들보다는 못하지만 일본을 젖힌 우수한 성적이다. 이 교수는 물리학을 전공한 계산과학부 교수. 물리학자가 왜 단백질을 연구하겠다고 나설까? 사실 단백질 구조는 인간게놈프로젝트 이후 최대의 관심사이며 전공을 넘어 머리를 맞대야 할 난제이다.
단백질이 DNA 정보에 따라 처음 만들어질 땐 1차원적인 아미노산 사슬 모양이다. 아미노산 사슬은 스스로 접히고 꼬여 3차원 덩어리가 된다. 이 과정이 '단백질 접힘(folding)'이다. 여기서 문제가 생기면 단백질은 기능을 하지 않고 생명체는 혼돈에 빠진다. 단백질이 입체구조를 가져야 모양이 맞는 단백질과 열쇠와 자물쇠처럼 결합, 생체작용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백질이 어떻게 자기만의 고유한 모양을 갖는지는 풀리지 않는 신비다. 처음 연구자들은 단백질이 무작위적인 탐색을 거쳐 가장 안정적인 구조를 취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는 불가능하다.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된 단백질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단백질 분자를 이루는 원자끼리는 공유결합을 하기 때문에 휘거나 끊어지기는 어렵지만 비틀려 각도를 바꿀 수는 있다. 하나의 아미노산이 취할 수 있는 구조를 3가지로만 잡아도 이 단백질은 3의100승개 구조를 가질 수 있다. 구조변화에 걸리는 시간은 10의13승분의1초. 그러나 단백질이 3의100승개 경우의 수를 탐색하는 데에는 1.6갽10의27승년, 우주의 나이보다 긴 시간이 걸린다. 이것이 '레빈탈 패러독스'다. 하지만 우리 몸 속에선 수초∼수분만에 단백질이 접히는 기적이 늘 일어난다.
단백질의 구조는 핵자기공명영상장치(NMR)나 X선을 이용해 밝힌다. 다만 하나의 구조를 밝히는데 1∼5년이 걸리거나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지난 50년간 구조가 밝혀진 단백질은 1%(인간 단백질의 경우 전체 10만개 중 1,000개)가 채 안 된다.
그래서 CASP를 통해 실험하지 않고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첫째로 이미 밝혀진 단백질과 아미노산 서열을 비교, 서열이 비슷하면 구조도 비슷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방법(상동성 모형화)이 있다. 두번째는 지금까지 밝혀진 400∼500가지 그룹의 단백질 구조 중 어디에 속하는지를 찾아내는 방법이다. 그러나 아미노산 서열이 완전히 새로운 경우 '아비니시오'(라틴어로 '처음부터'라는 뜻)라는 새로운 접힘 예측을 해야 한다. 수학자, 물리학자, 컴퓨터공학자들이 나설 때다.
단백질 구조 예측은 복잡한 함수 풀이다. 단백질을 구성하는 원자끼리 작용하는 전자기력, 공유결합에 의해 작용하는 힘, 원자가 이루는 각도에 따라 작용하는 힘 등을 변수로 삼아 어떤 구조일 때 에너지가 얼마냐 하는 에너지함수가 만들어진다. 물질은 에너지가 가장 낮을 때가 가장 안정적인 상태. 즉 에너지 최소값이 단백질 구조의 해답이다.
이주영 교수가 새로운 접힘 예측 분야에서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복잡한 함수의 최저값을 찾는 방법을 개발한 덕분이다. 복잡한 문제를 푸는데 이용되는 것이 이 교수의 전공분야인 통계물리학. 이 방법으로 이 교수는 전체 50문제 중 절반을 풀었고, 새로운 접힘 예측 5문제 중 4문제의 해답을 내놓았다.
특히 이 교수팀은 제일 어려운 헤모필러스 인플루엔자 단백질 문제에서 3위를 차지, 주목을 받았다.
세계 200개 연구팀은 통계물리적 방법을 비롯한 여러 해법을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과를 보이는 수준은 아니다. 에너지함수 자체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현재 단백질 접힘 연구는 천문학과 물리학이 태동하던 때와 비슷한 한계에 봉착해 있다. 당시 학자들은 행성의 운동을 관찰, 케플러 법칙 등 부분적 운동법칙을 알아냈지만 뉴턴의 역학이 집대성된 뒤에야 모든 운동법칙이 명료해졌다. 부분적으로만 알려진 단백질 접힘 연구도 에너지함수에 돌파구가 생긴다면 큰 진전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단백질이란
단백질은 생명현상의 요체다. 모든 생명현상의 정보가 DNA로 저장돼 있다면, 실제 수행하는 주인공은 단백질이다. 상처가 나면 혈관에서 '트롬빈'이 분비돼 피가 엉겨 멎도록 하고, 팔을 움직이려면 근육에서 '액틴'과 '미오신'이 만들어져야 하며,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된다.
유전자 문제로 단백질이 만들어지지 않아도 병이 되지만 접힘의 이상도 문제를 일으킨다. 뇌 신경세포에서 잘못 접힌 단백질이 침착된 병이 알츠하이머다. 낭포성 섬유증, 광우병, 비 유전성 폐기종, 많은 암들도 단백질의 구조 이상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무엇 때문에 단백질 접힘에 교란이 생기는지는 베일에 싸여있다. 미국은 인간의 모든 단백질 구조를 밝혀 DB화하는 구조적 유전체학(Structural Genomics) 연구를 추진하고 있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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