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다는 동지였다. 밤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시름이 깊어지는 이들이 바로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이다.권모(42) 과장이 바로 그렇다. 그는 벌써 석달째 날밤을 새고 있다. 처음엔 부장과의 사소한 말다툼 때문에 신경이 쓰여 그런 줄 알았는데 술자리에서 화해를 하고 앙금이 가셨는데도 하얗게 밤을 지새는 일은 계속됐다. 평소 들리지도 않던 시계소리가 시한폭탄에 붙은 타이머 소리처럼 권씨를 압박해 온다. 옆에 누워 잠 든 아내를 보고 있노라면 부럽다 못해 야속해져 쥐어 박고 싶을 정도로 얄미워진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 이쯤 되면 권씨는 잠자리를 박차고 나와 거실 소파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순식간에 권씨는 수천마리 양을 치는 목동이 되어 버린다. 다시 벌떡 일어나 소설책도 뒤적이고 케이블TV도 보지만 시간은 자꾸 가고 여전히 잠이 오질 않아 점점 초조해진다. 그러다 현관 밖에서 "탁"하는 조간신문 배달소리가 들리면 권씨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다. 권씨에게는 조간신문은 '날샜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을 꼬박 샌 권씨는 오늘도 충혈된 눈을 비비며 출근을 하지만 근무시간 내내 피곤하고 짜증이 난다. 매사에 집중은 안되고 식은 땀만 나고 온 몸은 누구한테 얻어 맞은 듯 욱신거린다. 어쩌다 점심식사 후 졸린 것 같아 막상 눈을 부쳐 보지만 소용 없는 일.
권씨같이 잠자기 위해 온통 정신을 쏟는 것을 '불면공포증'이라 하는데 원래 의도와는 반대로 오히려 불면증을 초래한다. 너무 잠을 자려고 노력하다 보면 교감신경이 흥분되면서 뇌를 각성해 오히려 잠이 달아나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오히려 잠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며칠 잠을 자지 않는다고 죽거나 미치지는 않는다'는 점을 명심하라! 또 불면증이란 그 자체가 병이라기보다 내 몸과 마음에 이상이 있으니 점검해 보라는 신호임을 알아야 한다. 술이나 수면제 등으로 신호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병을 키우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정찬호 정신과전문의·마음누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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