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2일 동결된 핵 시설의 봉인과 감시카메라를 제거하고 나선 것은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벼랑끝 전략'의 강도를 한층 높이기 위한 '벼랑끝 다가가기'로 풀이된다.북한은 이날 봉인 및 감시카메라 제거 작업이 시작됐다는 보도를 내보내면서 "핵 시설을 다시 동결하는 문제는 미국측에 달려있다는 것을 명백히 하고 미국의 태도를 주시해 왔다"며 "미국은 이런 노력에 호응을 보이는 대신 '선 핵포기 후 대화' 주장을 고집하고 국제적인 압박공세를 강화하는 것으로 대답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북한의 이번 조치가 미국을 압박해 대화로 이끌어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2일 핵 동결 해제 결정 이후에도 미국이 "핵 문제 해결 없이는 대화가 없다"는 입장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은 데 대한 북한의 대응인 셈이다. 북한이 이날 보도에서 핵 시설 가동이 전력 생산 공백을 메우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나 제네바 합의 파기 책임을 미국에 돌리면서도 명시적으로 제네바 합의 파기를 선언하지 않은 점도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한 핵 동결 해제 결정에 따라 구체적 행동을 위한 단계적 조치들을 하나씩 취해갈 가능성이 높다. 우선 다음 단계로 이번에 봉인 및 감시카메라를 제거한 영변의 5㎿ 원자로 가동을 위한 연료 재장전의 조치 등을 취한 뒤 실제 가동 단계까지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북한은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폐연료봉의 봉인 제거 등 북미간 위기가 현실화할 수 있는 수위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봉인과 감시카메라 제거에 나선 21일 노동신문을 통해 "핵 동결 해제 선언은 미국이 주장하는 '핵무기 개발계획'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밝힌 것도 '벼랑끝 전략'이 자칫 '파국'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이번 조치에 대응해 한미일도 경수로 건설 지원 중단 등 북한에 대한 단계적 조치들을 검토할 가능성이 있어 한반도 정세는 당분간 긴장이 고조되는 국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하지만 북한이 폐연료봉에 손을 대지 않고 영변 핵 시설만 재 가동할 경우 사용후 핵 연료봉의 재처리를 통해 플루토늄을 추출하기까지 1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협상을 위한 시간은 있다는 게 정부측의 시각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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