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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평민열전 / 역관 의원 기생 건달… 조선 평민의 비범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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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평민열전 / 역관 의원 기생 건달… 조선 평민의 비범한 삶

입력
2002.12.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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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경진 편역 웅진북스 발행 1만 5,000원조선은 양반 사대부의 나라였다. 그러나 조선을 떠받친 것은 피지배층 평민이었다. 각종 생업에 종사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다 간 그들의 자취는 조선왕조실록 등 공식적인 역사 기록에서 밀려나 있다. 모든 것이 지배층 중심으로 쓰여졌기 때문이다. 평민이 직접 쓴 평민 전기가 등장한 것은 임진왜란 이후로, 전란을 겪으면서 지배층의 권위가 흔들리고 눌려 지내던 평민 세력이 커진 것과 때를 같이 한다.

허경진(50) 연세대 국문과 교수가 펴낸 '평민열전'은 이처럼 역사의 밑바닥에 묻혀있던 조선시대 평민 110명의 삶을 전하고 있다. 대부분 임진왜란 이후에 살았던 인물들로, 신분은 미천했으나 학식과 재주, 덕망이 뛰어났거나 행적이 남달랐던 사람들이다. 시인 화가 역관 의원 아전 장사꾼 기생 궁녀 노비에 심지어 건달이나 깡패, 도둑떼의 두목까지 포함돼 있다. 이름난 화가 김홍도 최북 장승업, 기생 황진이 정도를 빼면 모두 낯선 인물들이다.

이 책의 주요 원전은 19세기 중반 편찬된 세 권의 평민전기집이다. 평민 화가 조희룡이 엮은 '호산외기'(壺山外記)와 아전 출신 유재건이 쓴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1862), 이들과 어울렸던 이경민의 '희조질사'(熙朝車失事)를 중심으로 골라 옮겼다.

한 명 한 명의 기록은 짧으면 한 쪽, 길어도 너댓 쪽을 넘지 않는다. 조선시대 전기문학의 형식인 '전'(傳)이라는 게 주인공의 행적 중 가장 비상한 사실만 간략하게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옛사람의 체취를 시시콜콜 온전히 되살리는 생생함은 약하지만, 핵심만 추려서 전하는 과정에서 그 시대의 가치관이 드러나고 있다. 예컨대 재가한 여인이 '열녀는 두 지아비를 섬기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고 젖먹이까지 떼어둔 채 남편과 헤어졌다 하여 칭송받거나, 고된 시묘살이로 병이 나서 죽은 열 세 살 어린 소년이 효자로 기려진 것은 요새 같으면 몹쓸 일로 비칠 것이다. 신분제의 벽에 막혀 뜻을 펴지 못하는 억울함을 토로하는 인물도 더러 보인다.

허 교수는 이번 열전에서 빠진 음악가들의 '전'만 따로 엮어 새해 초 출간할 예정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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