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그 어느 선거보다도 극적이었던 16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국민경선과 여론조사를 통한 후보단일화라는 새로운 정치적 실험을 거친 21세기의 새 대통령이 탄생하였고,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우리 사회에서 정치를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조직도 돈도 없고, 학연이나 지연도 없는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은, 낡은 정치를 청산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간절한 열망과 젊은층이 중심이 된 열성적인 지지자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이루어낸 승리이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 국민은 한결 수준 높은 정치문화를 이룩하였다. 선거 때마다 빠짐없이 등장하던 흑색선전이나, 투표일을 며칠 앞두고 발생한 북한의 핵문제도 별다른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고, 투표 7시간 전에 일어난 정몽준 국민통합21 대표의 지지철회 발언도 커다란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돈을 뿌리며 청중을 동원하는 구태의연한 선거운동 대신 희망돼지저금통으로 상징되는 자발적인 모금과 인터넷과 각종 미디어를 통한 선거운동이 자리잡았다. 이 모든 것이 후보 개인이나 후보가 속한 정당에서 주도한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이루어낸 변화라는 점에서, 이번 선거의 진정한 승리자는 우리 국민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국민들이 정치인들보다 한발 앞장서서 정치개혁을 시작한 것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국민통합과 동서화합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노 당선자의 공약에도 불구하고 투표결과 여전히 영호남을 기반으로 한 지역구도가 그대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지역갈등을 뛰어넘어 국민통합을 이룩하는 일은 21세기에도 여전히 미해결의 과제로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노 당선자는 현 정부의 자산과 부채를 모두 인수하겠노라고 약속한 바 있다. 현 정부가 남긴 가장 큰 자산으로는 햇볕정책이 이루어낸 남북관계의 진전을 들 수 있을 것이다. 햇볕정책을 계승 발전시켜 미국의 호전적인 대외정책과 북한의 핵문제로 긴장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시키는 것이 그가 이어받은 자산을 더욱 키워나가는 길이다.
현 정부가 남긴 부채는 자산에 비해 훨씬 많아 보인다. 측근과 가신들에 의한 밀실정치와 부정부패, IMF 이후 더욱 벌어진 빈부격차, 일관성 없는 교육정책의 폐해, 여전히 남아있는 지역갈등, 미수에 그치고 만 검찰과 언론 개혁 등. 앞으로 노 당선자가 갚아 나가야 할 부채는 수없이 많다.
그 중에서도 가장 시급히 청산해야 하는 부채는 낡은 정치를 개혁하는 일이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들이 먼저 시작한 정치개혁을 완성하는 것은 21세기 새 대통령의 역사적인 사명이다. 하루 빨리 부패한 정치, 낡은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철저하게 실행에 옮겨야 한다. 만약 이 의무를 소홀히 한다면 국민들은 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정치개혁을 이루는데 필요한 조건들은 어느 정도 마련되어 있다. 국민경선 이후 민주당의 내분 과정에서 구시대 정치인들과 원칙도 소신도 없는 철새 정치인들이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고, 원칙 없는 야합이라는 비난을 받던 국민통합21과의 공조 역시 정몽준 대표의 갑작스러운 지지철회를 계기로 서서히 청산될 것으로 보인다. 그의 말마따나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오직 국민에게만 빚진 대통령으로서 정치개혁을 완성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마련된 셈이다. 노 당선자는 이번 기회를 놓치지 말고 흔들림 없이 원칙에 따라 정치개혁의 과제를 완수하기 바란다. 그것이 국민의 가장 큰 바람일 것이다. 어느 네티즌의 표현대로 노 당선자는 이제 작은 언덕을 넘었을 뿐이다. 선거에서의 승리는 시작일 뿐이며 낡은 것들과의 싸움은 이제부터라는 점을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노 당선자와 국민들이 함께 이루어내는 '유쾌한 정치개혁'을 기대한다.
이 유 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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