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20일 오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북핵 문제와 정치·재벌 개혁, 남북정상회담 등 새 정부 국정운영 방향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한미 관계와 북한 핵 문제
―북한의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선거과정에서 여러 가지 구상을 밝혔는데 이것은 당선되기 전 외교·안보 상황에 대한 충분하고 깊은 정보를 고려하지 않고 후보라는 정치적 상황에서 포괄적으로 대강 짚은 것이다. 당선자로서 안보 외교 통일에 대해 책임 있는 담당자로부터 많은 정보를 청취하고 의견을 들어 좀더 준비해 국민에게 책임 있는 말씀을 드리겠다. 전체 기조는 선거 이전에 말했던 것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북·대미관계는 김대중(金大中) 정부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외국 정부, 특히 미국 부시 행정부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정치변화를 요구하는 국민적 열망이 분출하고 있다. 대외관계에서는 미선·효순양 사건으로 국민의 의사표시 또는 국민감정이 크게 표출된 것 외에는 관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요구는 없다. 대외관계에서 기조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 국민 관심사인 한미 관계는 상호협력의 관계, 국가위신과 국민의 자존심을 서로 살리는 상호 평등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특히 북한 핵 문제와 여중생 사망 사건을 둘러싼 한미관계에 대해선 기존 기조 위에 구체적인 해결방법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아 준비하겠다."
―당선 후 북한 김정일(金正日) 위원장을 만날 것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시기와 장소는.
"모두 만나서 해결하길 원한다. 언제 어떤 순서로 만나 어떻게 풀 것인지는 선거운동 과정에서 말할 성질이 아니다.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책임 있는 외교행위이므로 외교를 해온 사람들과 충분히 논의·결정해 밝히겠다."
■정치개혁과 정계개편
―민주당의 환골탈태 등 정당개혁 실천을 언급했는데 구체적인 복안은.
"국민들의 여망을 받들어 정치개혁이 시급한 과제라고 말한 것이다. 이 문제를 풀어가려면 하나의 모순을 해결해야 한다. 민주당은 지난해 당헌·당규 개정 시 당정분리를 선언했다. 대통령후보는 당 대표를 겸할 수 없고 대통령이 되더라도 당을 지휘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이 같은 당정분리 기본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은 민주당 정치개혁 등의 과제를 수행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당정이 분리되고 당직을 떠나도 '나는 정치개혁을 모른다'고 할 수 없는 게 정치적 현실이다. 이런 모순된 현실을 잘 조화시켜야 한다. 나는 평당원이자 정치에 큰 책임을 맡은 사람으로서 정치변화를 국민과 함께 수행할 책임을 느낀다. 정치개혁에 대해 함께 참여하고 방향을 제시하겠다. 하지만 정치개혁의 구체적인 과정은 결국 당에 맡겨져야 한다. "
―인위적 정계개편을 할 의향이 있는가.
"지금은 대통령 힘으로 정계개편을 할 수 없다. 권력기관과 정보기관을 동원해 뒷조사한 약점을 가지고 움직이는 시대가 아니다. 또 그것(정계개편)을 할 만한 금전적인 밑천도 없다. 대통령이 소신 있는 정치인을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도하면 역풍을 맞고 국민한테 큰 낭패를 본다. 가능하지도 않고, 할 의사도 없다. 정치권이 알아서 판단해야 한다. 어느 쪽이든 대화를 통해 합리적이고 국민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하자고 권고하고 협력해 나가겠다."
―민주당은 소수당인데 인위적 정계개편이 없다면 개혁이 힘들어지지 않겠는가.
"물론 쉽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정치는 대화와 타협에 익숙치 않고 경험이 축적돼 있지 않다. 프랑스나 미국, 독일의 경우 좌·우 연립정부와 여소야대가 있지만 잘 해 나간다. 의지를 가지고 대화와 협력을 하면 여소야대도 어렵지 않게 풀어갈 수 있다. 지금 우리 정당의 경계는 지역으로 나눠져 있다. 지역주의 해소 과정에서 자연히 불안한 동요상태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치권에서도 새 정치 질서에 대해 고민하고 나라가 잘 되는 방향으로 의견 수렴할 것이다. 성실히 대화하고 국민이 원하는 방향을 잘 알면 모두 협력할 것이다."
■국민통합
―개표 결과 지역주의 벽을 넘는데 한계가 드러났다. 국민통합을 위한 방안은.
"어떤 정책과 전략은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존재의 기반이다. 내가 걸어온 정치의 길이나 살아온 지역적 기반 등을 통해 볼 때 그 이전 지도자들이 가진 존재기반의 한계(지역 기반)를 갖고 있지 않다. 어제 나타난 결과(영호남 표 갈림)는 기존 정치질서와 공방이 계속되는 관계에서 상대방이 열심히 노력했기 때문인 측면도 있다."
―역점을 둘 개혁 분야는.
"개혁이라는 것은 어느 한 시기에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물 흐르는 것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어느 부분을 개혁하겠다는 말보다 정치를 함께 한 사람들과 원칙을 지키고 불합리한 것을 시정하도록 노력하겠다. 이 목표를 향해 가면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이번 선거를 보면 선거법 등 법과 제도를 고치지 못했지만 선거문화는 엄청나게 달라졌다. 개혁과제와 절차를 말하는 것보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어떤 의지와 방향을 갖고 나가느냐에 따라 많이 달라진다."
■서민경제와 재벌 개혁 문제
―가계비 급증과 지가 및 물가상승 등 내년 봄 서민경제 불안이 예상되는데.
"집값이나 물가, 경기 등은 단기적인 경기정책의 문제이므로 경기정책 전문팀에 맡겨 해결해야 한다. 대통령이 경기정책을 직접 하면 큰 오류를 일으킬 수 있다. 경기운용에는 정치적 관점이 개입되지 않아야 한다. 전문팀에 맡기고 대통령은 잘못 가지 않는지 주의하고 통제하는 것이 옳다. 서민생활 안정을 토대로 빈부격차 없이 가야 역동적 경제가 된다. 정책은 그 방향으로 갈 것이다."
―재벌개혁의 지속성을 강조했는데 재벌은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조화방안은 무엇인가. 외국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는 노동시장 유연성 문제는.
"선거 와중에 공방을 벌이다 보면 본래 뜻이 왜곡돼 전달된다. 재벌은 재벌이고 대기업은 대기업이다. 대기업이 왕성하게 경제활동하는 것이 성장에 필요하다. 내가 말한 것은 재벌의 불합리한 경제시스템을 고치지 않으면 경제에 부담이 되고 효율성을 떨어뜨려 경제위기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재벌시스템 개혁이 이완된 것을 경제에 부담이 안 되게 바로 잡겠다. 나는 1998년 정리해고를 수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득했다. 노동유연성은 불가피하고 이미 수용돼 있다. 비정규직이 56%인 것은 비정상적 유연성이다. 이러면 노동유연성이 더 나빠지므로 시정해야 한다. 일부 대규모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 해고가 힘들도록 버틸 힘이 있고 제도적 보장도 돼 있다. 한국은 유연성이 없다는데 이는 부분적이기 때문에 노사타협을 통해 잘못을 해소할 수 있다. 한국 노동시장은 유연성이 아주 높다."
(추가발언)
"한마디 더 하겠다. 이론적인 부분에 치우쳐 국민이 명쾌하게 듣고 싶은 부분을 놓친 것 같다. 서민경제가 안정되도록 물가와 땅값은 반드시 잡겠다. 확고한 의지로 전문가 도움을 받아 경제활력을 높이겠다. 재벌문제에 대한 외국의 우려가 없도록 방향을 잡겠다. 시장개혁에 후퇴는 없다. 해외투자가들은 한국은 노동유연성이 떨어져 해고가 어렵고 기업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노조가 결성된 대규모 사업장만 그렇지 대부분은 유연성이 높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배성규기자 veg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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