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세대 미술평론가'이자 '영원한 미술관장'으로 불리는 석남(石南) 이경성(李慶成·83)씨가 쓸쓸한 노년을 보내고 있다.이씨가 거주하고 있는 곳은 서울 종로구 가회동 한국병원. 부인과 사별하고 외동딸도 이민간 후 여의도 아파트에서 혼자 살다 올 2월 전세금을 빼 옮긴 곳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건강 체크도 자주할 수 있고, 시내와도 가깝다"고 했다. 그런데 최근 노인병동 운영으로 적자난에 시달리는 병원으로부터 다음 달까지 병실을 비워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연말에 딸 은다씨를 보러 미국에 건너 가지만 낯선 땅에서의 생활이 미덥지 못해 내년 2월 제22회 석남미술상 시상식을 전후해 귀국할 예정이다. 다행히 서울여자간호대학이 운영하는 노인병동(종로구 평창동)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지만 미봉책이긴 마찬가지. 평생 청빈의 길을 걸어온 그는 많은 지인과 후배들이 있음에도 막상 몸 하나 마음 편히 누일 곳이 없는 것이다.
와세다대 법대 출신의 이씨는 해방 직후 인천시립박물관장을 맡은 이래 50여년 동안 이화여대, 홍익대 교수를 역임하며 국립현대미술관, 워커힐미술관, 서울올림픽 미술관장 등을 지냈다. 1965년 한국미술평론가협회를 창립했으며 81년 석남미술상을 제정, 매년 후배들을 격려하고 있다. 특히 '내가 그린 점 하늘 끝까지 갔을까'(김환기비평집), '아름다움을 찾아서' 등 예리하고 깊이 있는 평론은 미술계의 방향타로 받아들여졌고, 50년간의 우리 작가와 작품에 대한 현장의 기록과 비평은'살아있는 교과서'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명실상부한 미술계 최고 어른에게 대한민국 예술원 내부의 알력으로 회원 자격이 주어지지 않는 등 합당치 못한 사회적 대우가 그의 외로움을 더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직접 그림을 시작, 올 2월 한국병원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관훈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석남이 그린 사람들'전을 열어 먹과 붓, 펜으로 그린 군상 및 단발머리 여인 등 100여점의 작품을 전시했다. 그 때 그는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외로워서"라고 했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그리워진다"는 것이다.
/박은형기자 voic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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