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과정서 노정된 국론분열의 치유, 안정적인 집권세력 구축과 정치개혁 추진 등 숱한 과제를 안고 있다. 북한 핵 문제 등의 해결에 있어서 기존의 한미 관계를 어떻게 보완·발전시켜야 할지의 문제는 한번도 미국을 방문한 적이 없는 노 당선자에게는 큰 숙제다.■국론분열 치유
이번 대선에서 영호남의 지역주의적 투표 성향은 조금도 누그러지지 않았다. 나라가 동서로 갈라져 있음이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노 당선자가 영남 출신이라는 점도 영호남간 지역 장벽을 허무는 데 크게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노 당선자가 선거 과정에서 드러난 국론분열을 치유하고 인사정책 등을 통해 동서통합의 정치를 성공시킬 수 있느냐는 현 정부의 과오와 업적을 어떻게 비판적으로 계승하느냐와도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영남지역에 팽배한 지역정서는 기본적으로 '반DJ''반 민주당'정서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는 노 당선자가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국민의 정부의 부정비리에 대한 책임추궁이 국민통합에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노 당선자는 지역주의에 온 몸으로 맞서 왔고 영남 출신이면서 호남의 압도적 지지로 당선됐다는 점에서 국론분열을 치유하는 데 적임자라고 할 수도 있다. 또 지역주의의 거점이 돼 왔던 '3김 정치'가 이제 자연적 수명을 다했다는 점도 긍정적인 대목이다. 국민통합의 과제는 노 당선자가 동서를 아우르는 인재를 모아 신당을 창당하고 새로운 집권 세력을 창출하는 과정과도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한미관계 등 대외 문제
이번 대선 과정에서 심심찮게 제기돼 온 외교역량에서의 노 당선자의 불안감은 이제 본격적인 검증을 받게 된다. 특히 당당한 외교를 강조해 온 한미 관계에서 노 당선자가 어떤 정책 기조를 선택할지 초미의 관심사다. 당장 노 당선자는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미국측에 새로운 정부의 정책 노선을 제시하고 협의에 들어가야 할 처지다. 노 당선자는 다만 대선 과정에서 여중생 사망 사건 등과 관련해 신중하고 균형 잡힌 태도를 보여줬기 때문에 한미관계의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노 당선자가 대선 유세 때 중국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하면서 새로운 동북아 시대의 도래를 예고한 것은 대체로 노 당선자의 균형 외교에 대한 감각과 의지로도 해석된다.
■여소야대 대처
'노무현 정권'은 원내 의석을 기준으로 소수파이다. 민주당의 의석은 102석에 불과한 반면 야당인 한나라당 의석은 과반을 훌쩍 넘는 153석에 달한다. DJ정부 출범 초기처럼 '여소야대'정국이 되풀이되는 것이다. 노 후보가 내세우고 있는 각종 개혁 과제의 입법을 위해선 국회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당장 초대 내각을 구성하려면 총리 국회 인준에 야당이 동의해 줘야 한다.
노 후보 앞엔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다. 대화로 야당의 협조를 이끌어내느냐, 아니면 의원 영입 등 인위적인 정계개편을 통해 의석을 불려 수의 힘으로 돌파하느냐이다. 노 후보는 선거 기간 두 방법 모두에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야당을 국정파트너로 인정하겠다고 하면서도 '신당 창당 시 문호 개방'을 천명해 야당 의원 영입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그의 선택이 주목된다.
■정치개혁
노 당선자의 가장 큰 정치적 화두가 바로 정치개혁이다. '낡은 정치 청산'은 그의 선거 모토이기도 했다. 노 당선자는 이를 위해 먼저 민주당 개혁을 구상하고 있다. 선거기간 신당 창당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었다. 당정분리의 원칙을 해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평당원이지만 대통령당선자의 정치적 무게를 갖고 당 개혁을 주도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구체적으로 당 주도세력을 기존의 범동교동계 등 DJ 직할세력에서 자신의 측근 그룹으로 교체하려는 시도가 예상된다.
상향식 공천 정착, 정치자금 문화 개선 등도 그의 중요한 관심사다. 민주당이 처음 도입한 당정 분리, 즉 대통령이 당권을 갖지 않는 초유의 정치적 실험을 그가 어떻게 이뤄낼지도 지켜볼 일이다.
/고태성기자 tsg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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