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수록 좋다'던 로고 마케팅의 시대가 끝나는 것일까.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너도나도 가슴 부위에 큼지막하게 브랜드명을 박아넣던 캐주얼업계의 오랜 관행이 최근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이름값' 보다 '품질'에 민감한 합리적 소비자들이 늘면서 로고 파워가 시들해진 데다 캐주얼상품의 주요 소비자층인 10대 중반부터 20대 초반 X세대들은 윗세대인 베이비부머들에 비해 브랜드 충성도가 떨어지는 것이 주요 이유. 그러나 무엇보다 큰 요인은 캐주얼브랜드의 생사여탈권을 쥐고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스타마케팅 차원에서 로고가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는 실정에 있다.인간미 있는 자연주의 캐주얼을 표방하는 '흄' 홍보실 서정심 과장은 "캐주얼브랜드는 TV를 통해 뜨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요즘 대부분의 오락프로에서는 브랜드 로고를 모자이크 처리해서 내보내기 때문에 연예인에게 로고 달린 옷을 입히는 차원의 스타마케팅은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결국 업체마다 로고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방송을 타고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확보할 수 있는 심볼찾기에 혈안이 되고있다"고 전했다.
서 과장은 방송사에서는 브랜드 홍보를 원한다면 차라리 PPL을 하라는 입장이지만 드라마 한편에 보통 3억원을 요구하기 때문에 중소 캐주얼업체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형편이라고 부연설명.
로고마케팅을 대체하는 것으로 현재 가장 각광받는 것은 이른바 '숫자마케팅' 이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숫자를 의상의 무늬로 활용해 소비자들이 쉽게 기억하게 만든다는 전략. 유니섹스 브랜드 '콕스(C.O.A.X)'가 대표적인 성공사례로 의상에 커다랗게 새겨놓은 숫자 '76'으로 인해 '76브랜드'라고도 불린다. 76은 맞춤정장을 즐겨입던 유럽에서 파격적인 히피패션이 등장했던 1976년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고.
캐포츠 브랜드 'EXR'은 숫자 '55'를 전면에 내세웠다. 조깅을 할 때 100m에 55초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피로가 누적되지 않는 가장 합리적인 운동시간이라는 통계에 기초했다. '클라이드'의 고유숫자로 등장한 '75'는 행운의 수 7과 재운 및 신비스러움을 뜻하는 5를 조합했으며 '레노마 짐'은 창업주의 탄생연도를 딴 63을 제품에 응용하고 있다. 또 내년에 선보일 브랜드중 '틸버리'는 2003년 탄생한다는 의미의 '23'을 이용한 숫자마케팅을 준비중이다.
고유의 심볼이나 색상, 무늬를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내세우는 것도 새로운 추세다. '흄'은 무려 3개월에 걸친 작업끝에 유머러스한 인간의 형상을 한 픽토패턴과 갈색과 녹색 베이지색이 어우러진 삼색 스트라이프를 심볼로 확정했다. '멤버홀리데이'는 삼각형 두개를 겹친 정사각형 무늬를 개발, 아예 원단에 자가드로 무늬를 새겨넣었다. 이 브랜드 홍보팀 박소영 팀장은 "아이콘을 디자인적 요소로 활용한 것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있다"고 말했다.
또 영국풍 스트리트캐주얼 '캐너비'는 왕관을 심볼로 채택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금 캐주얼업계는 PPL을 주요 수익원으로 삼으려는 방송사와 일종의 브랜드 아이덴티티 전쟁을 치루는 중"이라면서도 "덕분에 대형 로고의 전시장같았던 티셔츠들이 로고대신 디자인과 감각을 갖추게 된 것은 기쁜 일"이라고 밝혔다.
/이성희기자 summ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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