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는 19일 밤 "이번에 또 다시 저는 국민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부덕의 소치이자 국민의 뜻으로 받아들이겠다"고 담담하게 패배를 시인했다. 이 후보는 이날 밤 종로구 옥인동 자택에서 부인 한인옥(韓仁玉)씨와 함께 TV로 개표방송을 지켜보다가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의 당선이 확정된 후 11시께 여의도 당사로 나와 대국민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그 동안 저를 믿고, 사랑하고, 지지해 준 국민에게 뭐라 드릴 말씀이 없고 모든 것은 제가 부족하고 못난 탓으로 죄인 된 기분"이라고 말했다.그는 "지난 5년간 고생했는데 또 다시 고생시킬 생각을 하니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다"며 "말로 다할 수 없는 어려운 상황에서 함께 손잡고 애써 온 당원들의 은혜와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이 후보는 대국민성명을 발표한 뒤 노무현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한다, 좋은 대통령이 되어 달라"고 말했다. 노 당선자는 "제가 먼저 전화 드려야 하는데 받게 돼 미안하다"며 "저는 절반의 대통령에 불과하고 나머지 절반은 이 후보의 것이니 많은 도움을 받고 싶다"고 화답했고 이 후보는 "아무리 절반이라고 해도 이제는 전 국민의 좋은 대통령이 되어 달라"며 통화를 마쳤다.
이 후보가 이날 대국민성명 발표 후 20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한 핵심측근은 "이 후보가 정계은퇴를 선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밤 11시30분께 성명을 발표, "김대중·민주당 정권의 극심한 실정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패해 국민께 뭐라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 할 지 모르겠다"며 "뜨거운 성원과 지지를 보내 준 국민들에게 감사 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 당은 뼈를 깎는 자성을 바탕으로 환골탈태할 것"이라며 "선거 결과에 관계 없이 국민과 약속한 정책에 대해서는 꼭 실천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이날 저녁 가슴을 졸이며 TV 개표방송을 지켜보다가 밤 8시40분께 이 후보가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에게 따라 잡힌 후 당선권에서 멀어져 가자 충격과 허탈을 감추지 못하며 잇따라 한숨을 쏟았다. 일부 의원은 패색이 짙어지자 당사 부근 음식점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하늘의 뜻이지"라고 푸념하는 등 패배의 아픔을 달래는 모습이었다.
/김성호기자 shkim@hk.co.kr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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