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저녁 16대 대선 개표는 얕은 경사의 오르막길을 달린 마라톤이었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접전은 말 그대로 피 말리는 승부였다.한때 득표율 1, 2위가 몇분 단위로 작은 차로 뒤바뀌어 긴장과 탄식, 환호를 자아낸 반면 전체의 3분의 1 지점에서 선두에 나선 노 후보가 이 후보와의 차를 조금씩 벌리며 변화 가능성을 배제한 측면도 있었다.
저녁 6시30분 투표함이 열리자 노 후보 우세를 점쳤던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후보가 먼저 치고 나갔다. 예상과 달리 부재자 투표 초반 개표에서 이 후보의 표가 많이 나왔고 이 후보가 절대 우세인 영남 지역 투표함이 먼저 열린 결과였다.
그러나 잠시 후 노 후보의 텃밭인 호남과 강세 지역인 수도권의 투표용지가 전자개표기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며 상황은 일변했다. 노 후보는 개표율 1.5%대인 저녁 7시23분에 처음으로 이 후보를 따돌리는 듯 싶더니 10분 후 이 후보가 다시 뒤집었다. 그리고는 노 후보의 꾸준한 추격전이 시작됐다.
이후 1시간여 동안 최대 5% 포인트까지 밀리며 고전하는 듯했던 노 후보가 가장 많은 유권자가 몰려있는 서울지역 개표 본격화와 함께 이 후보와의 표차를 좁히더니 밤 8시40분 개표율 32.5% 지점에서 나란히 섰다. 2, 3분 동안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졌으나 결국 선두에 나선 것은 뒷심이 강한 노 후보였다.
밤 8시42분께 분명한 리드를 잡은 노 후보는 이 후보의 추격을 다시는 허용하지 않은 채 앞으로 앞으로 달렸다. 조금씩 이 후보와의 거리를 벌리더니 밤 9시20분께 1.2% 포인트까지 벌렸다.
5년 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이 후보를 상대로 이쯤에서 의미 있는 승세를 잡았듯 노 후보는 당선을 향해 조금씩 보폭을 늘려갔다. 밤 9시40분께 방송사들은 앞을 다퉈 노 후보에게 '당선 유력' 깃발을 들었고 밤 11시30분께는 '당선자' 타이틀을 안겼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노원명기자 narzi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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