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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6인의 대통령을 추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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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줌마 일기 / 6인의 대통령을 추억하며

입력
2002.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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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선 때는 남편과 지지 후보가 어긋나는 바람에 뉴스 보며 말싸움도 많이 했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후보의 경제 정책을 심히 불안해 했고 난 그가 선택한 후보 아들의 병역 면제 시비를 내내 찜찜해 했다. 손녀딸의 원정출산 논란도 마음에 안 들었다.남편은 그럴 때마다 좀 큰 그림을 그려보라며 날 구박했다. 내 선택이 다분히 감상적이며 즉흥적이라고 공격하기도 했다. 대통령은 냉장고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했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던 탓인지 내 편이었다. 고3 큰딸은 아직 선거권이 없음을 원망하며 ‘내가 투표했으면 엄마 후보 찍었을텐데…’ 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사실 난 남편과의 티격태격이 즐거웠다. 그리고 내심 남편의 후보가 당선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저쪽이 되면 내가 망하는, 그래서 목숨 걸고 상대방을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내 후보가 더 맘에 드는 상황, 누가 되어도 우리나라가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시대는 지나갔다는 믿음 같은 것이 날 너그러운 유권자로 만들어 주었는지도 모른다.

이번 대통령은 내 생애 8번째 대통령이다. 아니, 내가 네 살 때 5·16으로 정권을 잡았던 박정희 대통령부터 따지면 7번째인가. 이번 대선 말고 유일한 양자 구도였다고 얘기되는 31년전의 박정희 대 김대중의 대결 때 난 중학생이었다. 다니던 학교가 마침 안국동 당시 신민당사 옆에 있어서 ‘이번에는 2번, 대중은 김대중’이라고 쓰인 플래카드를 바라보며 등하교하곤 했었다. 그 대선은 사실상 박정희 시대로는 마지막 민주 선거였고 고3 여름방학 특강중 육영수여사의 총격 사망 소식을 들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박대통령이 암살됐다. 그 다음은 거의 악몽이다. 다니던 신문사는 자매 방송사를 빼앗겼고, 회사 건물은 하루 아침에 유령의 집으로 변했다. 사옥 옥상에서 방송사 깃발이 내려지는 마지막 저녁 뉴스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던 기억들…. 그 후 20여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겪었다.

그 양반들 밑에서 우리는 불행한 적이 많았지만 분명한 것은 조금씩 불행의 비중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아이들 손잡고 투표장을 향하면서 난 누가 대통령이 되든 우리 세대의 아픔을 우리 아이들이 또다시 겪게 되지는 않으리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이제 누구도 나처럼 유치원 입학 전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한 사람의 대통령 밑에서 성장하게 되는 일은 없으리라. 그리고 대통령 부부를 총탄에 잃는 일도 다시는 없으리라. 새 대통령에게는 격려를, 또 다른 후보에게는 위로를 보내며 우리 아이들이 더 행복한 대통령과의 추억을 지니게 되길 꿈꾸어 본다.

이덕규(자유기고가·)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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