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18일 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에 대한 지지를 전격 철회함으로써 투표일 하루를 앞두고 대선은 막판 충격파에 휩싸였다. 이 파동은 선거 분위기를 급전시킬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통합21 김행(金杏) 대변인은 이날 밤 10시30분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정 대표는 노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며 국민 여러분께서 각자 현명한 판단을 하시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윤오(洪潤五) 대변인은 "민주당이 먼저 공조를 파기함으로써 양당 공조는 깨졌다"고 공조 무산까지 선언했다. 통합21은 지지 철회의 명분으로 노 후보의 대북·대미관을 들었다.
김 대변인은 " 노 후보는 명동 유세에서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고 표현했는데, 미국은 우리를 도와주는 우방이지 북한과 싸울 이유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시각"이라며 "노 후보의 발언은 정책 공조 정신에 어긋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노 후보의 종로 유세 내용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는 후문이다. 홍 대변인은 "명동 유세에서 정 대표에 대한 모독 발언이 있었던 것도 배경이 됐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유세 도중 "일부가 피켓에 '다음 대통령은 MJ'라고 썼는데, 너무 속도를 위반하지 말라. 바로 내 옆에는 대찬 여성지도자 추미애(秋美愛) 의원이 있고, 경선을 끝까지 지켜준 정동영(鄭東泳) 최고위원도 있다"며 차기 대선후보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았다. 따라서 공조의 기본 틀인 정 대표의 차기 보장 합의가 근본 부정된 데 대한 정 대표의 직설적 반응이 지지철회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내 유세가 끝난 뒤 정 대표는 최운지(崔雲芝) 공동선대위원장 등 통합21 당직자 10여명과 함께 시내 음식점에서 긴급대책회의를 가졌다. 당직자들은 이 자리에서 "민주당측은 통합21 당직자들이 유세 연단에 올라가는 것도 막았다"며 불만을 터트렸다.
대다수 당직자들은 "노 후보와 민주당을 믿을 수 없다"며 "민주당이 먼저 공조를 깬 셈이므로 노 후보 지지 철회 입장을 밝히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당직자들의 주장을 수용, 대변인 성명을 발표하도록 했다.
정 대표의 한 측근은 "유세 기간 노 후보측 '탈레반(강경파)'의 움직임을 보면서 정부 공동 운영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한나라당 성향의 지인들이 정 대표에게 공조 파기를 강력 건의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으나 정 대표측은 "한나라당과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민주당측이 공조 복원을 위한 설득에 나선 데 대해서도 정 대표측은 "복원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일화 합의 파기가 대선 경쟁에 몰고 올 파장의 강도에 대해서는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와 노 후보가 오차 범위내의 접전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승부를 가르는 변수가 될 것이란 분석이 있다. 이 경우 정 대표는 후보단일화를 통해 노 후보가 지지율에서 이 후보를 추월하게 만드는 동력이 됐다가 막판에는 노 후보에게 급제동을 거는 정반대의 2중 역할을 하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이미 노 후보 지지표가 상당히 굳어졌기 때문에 정 대표의 결정이 노 후보 지지표를 삭감하는 데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란 반론도 있다.
/김광덕기자 kdkim@hk.co.kr
■ 노무현 유세 문제발언
정몽준 대표를 지지하는 분이 저기 있는데, 피켓에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썼다. 너무 속도를 위반하지 말라. 바로 내 옆에는 대찬 여성지도자 추미애 의원이 있다. 앞으로 여성의 시대다. 추 의원은 내가 잘못된 길을 가면 멱살을 잡고 제지할 사람이다. 다음에는 여성대통령이 나와야 하는것 아니냐.
또 국민경선을 끝까지 지켜주고 내 등을 떠받쳐 준 정동영 최고위원도 있는데 어떠냐. (차기 대통령 후보가) 한 사람밖에 없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있는 것이 든든하지 않겠느냐. 서로 경쟁하면 원칙을 지키고 국민에 봉사하려 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 희망이 있고 미래가 있다는 것을 말씀 드리려는 것이다. 싸움을 붙이기 위한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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