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현재 경찰이 집계한 이번 대통령 선거의 불법선거사범은 총 1,216건. 숫자로만 따지면 지난번 대선 같은 기간과 비교해 거의 3.8배에 달하는 혼탁양상이다.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좀 다르다. 거의 절반 가까이가 인터넷을 통한 상대후보 비방이다. 5배나 늘어난 금품, 향응 제공 사례도 규모나 액수에서 전에 비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나 경찰 관계자들은 "확실히 선거 분위기가 달라졌다. 선거사범 적발건수가 늘어난 것은 적극적인 단속활동과 함께, 사소한 위법행위조차 보아 넘기지 않고 신고할 만큼 유권자들의 의식이 성숙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선거문화의 변화 양상은 어디서나 발견된다. 서울의 관광버스 업체 관계자는 "전 같으면 버스가 주차장에 서있을 틈이 없을 땐데 평상시와 비슷한 정도의 관광 스케줄만 소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업체측도 "연말 해돋이 관광객에나 기대를 걸고 있다"고 적이 실망스런 표정으로 푸념했다.
대목을 기대했던 대형음식점들도 오히려 선거 '냉기'를 탓하고 있다. 다들 몸을 사리는 통에 평소 연말보다도 예약건수가 뚝 떨어졌다.
선거판에 도무지 돈이 돌지를 않으니 '돈 준만큼 움직인다'는 오랜 선거운동 철칙도 사라졌다.
대신 '집값을 잡을 사람은 000 후보 밖에 없다', '통일시대를 열어갈 지도자는 후보 뿐' 이라며 저마다 입씨름을 벌이는 풍경은 쉽게 눈에 띈다.
퇴근 후 자발적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유권자도 늘고 있고, 젊은 층에서 '투표하고 놀러가기' 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달라진 모습이다.
정치판의 온갖 구태와 이전투구 속에서도 유권자들의 수준은 알게 모르게 이 만큼 발전해 왔다. 내일 밤 누가 당선되든 가장 무겁고도 두렵게 여겨야 할 대목이다.
최기수 사회1부 기자 mount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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