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칠 때 떠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에 연연하다 보면 그 기회를 잃고 만다. 그러나 어쩌랴, 그 또한 인생인 것을…."김 회장(최불암)이 마당에서 장승처럼 오랫동안 선 채로 나직하게 혼잣말을 뱉었다. 16일 오후 10시 여의도 MBC C스튜디오. '전원일기'(극본 김인강, 연출 권이상)가 1,088회 '박수칠 때 떠나려 해도' 녹화로 22년 2개월의 기나긴 여정을 마치는 순간이었다.
22, 29일 방송 분량을 녹화하기 위해 오후 2시에 '전원일기' 식구들은 여느 월요일과 다름 없이 대본을 손에 들고 삼삼오오 모였다. 종영을 기념하는 사진 촬영을 마치자 그제서야 실감이 난다는 듯 하나 둘 아쉬움의 탄식이 나왔다. 응삼이(박윤배)가 "여름 겨울 의상을 다 갖다 줬어"라고 말하자, 귀동(이계인)이가 "아쉽기는 하지만 녹화는 해야지"라며 분위기를 추슬렀다. 1,087회는 노마(정인호)가 취직을 해 동네가 떠들썩한 잔치 분위기여야 했지만,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22년을 함께 한 전원일기 식구들은 가슴 속에 묻어두었던 소중한 추억들을 꺼내며 지나간 세월을 반추했다. 할머니(정애란)는 "늘 끝날 때마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했다"고 말했고, 김 회장(최불암)은 "둘째 아들에게 농사를 대물림한 게 가슴이 아파. 꿈도 많았을 텐데"라며 지난 20년의 추억을 되짚었다. 어머니 역의 김혜자는 "전화를 처음 놓고는 죽은 친정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며 눈물을 흘리던 기억, 곳간 열쇠를 맏며느리에게 넘겼을 때"를 가슴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내 집 같은 이 스튜디오를 다 부순다니 가슴이 아프다"고 일용네(김수미)는 안타까워했다. 일용(박은수)과 일용처(김혜정)는 "경운기를 몰다가 논바닥에 떨어졌던 기억"과 "고추 농사를 망쳤던 일"을 떠올렸다.
1980년 10월 21일 1회 '박수칠 때 떠나라'를 시작으로 농촌 대가족의 삶을 보여줬던 '전원일기'는 김 회장의 회상 장면을 끝으로 큰 극적 사건 없이 조용하게 마무리를 지었다. 내년 1월5일부터 가족 드라마 '기쁜 소식'(극본 김인영, 연출 이정표)이 그 뒤를 잇는다.
/이종도기자 ecr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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