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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패트롤]서해 해경함 4박5일 동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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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패트롤]서해 해경함 4박5일 동승기

입력
2002.1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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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두…뚜."날카로운 기계음이 어둠을 찢어 발겼다. "단정(보트) 요원 조타실 집합. 중국 어선 검색 예정." 스피커로 날아든 날선 목소리는 흔들리는 침대 위 얄팍한 잠 위로 내리 꽂혔다.

12일 새벽4시35분 전남 소흑산도 서쪽 8마일 해상. 사위는 검었고 출렁이는 물소리만이 바다임을 알게 했다. 전남 목포해양경찰서 소속 1001함은 항해등마저 꺼버린 채 검은 바다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숨겼다.

출렁대는 배 위에서 대원들은 최소한의 불빛만으로 보트를 바다 위에 띄웠고 레이더 모니터는 중국어선으로 신고된 배를 한 점으로 찍어댔다. 함장 최창삼 경정의 지시가 떨어졌다. "어선에 접근, 국적을 확인해 통보할 것."

쾌속 보트는 해경 대원 7명을 싣고 3마일 떨어진 목적지를 향하고 모선도 포복하듯 천천히 물살을 갈랐다. 수평선에 박힌 한 점 불빛을 향해 달려나간 보트는 20여분 뒤 한국어선임을 무전기로 알려왔다. 오인 신고였다. 팽팽하던 긴장의 끈은 허탈하게 풀렸다.

■출전의 아침

1,000톤급 해경 경비함 1001함은 10일 오전9시 목포해경 전용부두를 출항했다. 1982년 건조돼 올해로 만 20년 된 배다. 배가 만들어질 때 나지도 않은 19살 전경에서 48살 고참 경사 등 46명이 타고 있었고 그들 모두에게 그날 아침은 '전쟁'의 시작이었다.

일주일 육상근무와 5일 해상근무를 번갈아드는 1001함 식구들의 출동 첫날은 흔들림에 대한 적응으로 이맛살이 편치 않은 날이다. 20년 가까이 배를 탄 갑판장 박병석 경사도 "적응이 됐다지만 파도가 거세면 속이 편치 않다"고 했다. 겨울 바다는 쉼 없이 출렁댔고 그 위에 뜬 함정은 전장(全長) 81.6m의 덩치가 무색하게 요동쳤다. 몸이 흔들림을 배겨내지 못하면 다리엔 쥐가 나고, 위장은 아침밥을 속절없이 게워낸다.

■포성 없는 전쟁

조금에 맞춰 조업 나온 중국 유자망 어선들이 수평선을 따라 좁쌀을 뿌려놓은 듯 촘촘하다. 작년 6월30일 한중어업협정의 발효로 대한민국 EEZ(배타적 경제수역)밖으로 밀려난 그들은 라인 서쪽 편을 따라 도열, 조업 중이었고 언제든 라인을 밀고 들어올 태세다.

어업협정에 따라 제한된 수의 중국 어선만이 허가를 받아 우리측 EEZ내에서 조업할 수 있고 저인망, 선망, 유자망 등 조업 방법에 따라 조업시기와 구역 제한도 엄격하다. 어선에 바짝 접근, 조타실 옆에 대문짝만하게 붙여놓은 허가번호를 확인해 허가대장과 대조하는 것으로 1001함은 'EEZ 사수전'을 시작했다.

출동 이틀째인 11일. 3번째로 단정이 내려졌다. 조업 허가를 받은 쌍끌이 저인망 어선이지만 그물이 수상했다. 치어 보호를 위해 그물망은 대각선으로 54mm를 넘어야 한다. "무차별 남획을 자행하는 중국어선을 막아내지 못하면 우리 어족자원은 씨가 마릅니다. 이것은 전쟁입니다." 함장은 오후 내내 망원경을 놓을 줄 몰랐다.

■목숨건 추격전

출동 4일째인 13일 오후4시. EEZ내서 조업중인 중국 어선들 사이로 허가번호판을 달지 않은 목선 한 척이 포착됐다. 섣불리 다가가면 줄행랑을 치기 일쑤여서 먼거리를 돌았다. 레이다가 표시하는 어선의 속도는 1∼2노트. 유자망 조업 중임이 감지됐고 함장의 지시가 떨어졌다. " 단정 하강."

비상 출동을 알리는 사이렌이 함내를 울렸고 쾌속보트가 바다의 흰속살을 발겨놓으며 3마일 거리 중국어선을 향했다. 어선은 그제서야 낌새를 채고 그물을 끊고 달리기 시작했다. 1001함의 5,000마력짜리 엔진 두 개가 굉음을 토해냈고 보트와 함께 중국어선을 조였다. "어선 거리 1,000…어선 거리 500." "우현 전타." 레이더맨은 끊임없이 사정거리를 외쳤고 키를 잡은 타수의 손엔 땀이 흥건했다.

'빠∼앙.'정선을 명령하는 기적이 망망대해 위를 울렸고 25톤 목선은 검은 연기를 토해내며 어지러운 곡선 괘적을 그렸다. 롤러코스터 마냥 흔들리는 보트 위에서 달리는 어선위로 몸을 던지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 바다에 빠지기라도 하면 스크루에 몸이 빨려 들고, 어선에 오르더라도 선원들이 식칼을 내던지며 반항할지 모른다. 나포되면 어획물을 압수당하고 2,000만원의 벌금을 물어야 하는 어선의 저항은 필사적이다.

급하게 방향을 바꾸느라 속도가 준 어선위로 대원 두 명이 몸을 던졌다. 조타실 문을 잠근 채 저항하던 선장 앞에 나숭권 순경이 가스총을 꺼내 들었고 이어 엔진이 꺼졌다. 8일 중국 요녕성을 출항, 우리측 EEZ내에서 유자망 불법 조업 중이던 중국 어선을 30여분간의 추격 끝에 나포한 순간이었다. 홍도 남서방 31마일 지점이었고 우리측 EEZ 6마일 안이었다.

출동 5일째인 14일 오후. 1006함과 교대한 1001함은 귀항을 위해 목포로 선수를 돌렸다. 대원들은 저마다 호주머니 깊숙이 넣어둔 휴대폰부터 꺼내 들었다. 함장은 "아들이 출동 나가 있는 동안엔 물동이에다 표주박도 함부로 던지지 않는다"는 노모에게 무사귀환을 알렸고 결혼 일주일 된 이창민 순경은 새색시부터 찾았다. 변동배 순경은 생후 8개월된 "딸이 섰다"는 소식을 듣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4박5일간 2,000여㎞를 쉼 없이 달려온 1001함은 14일 오후5시 목포 해경 전용부두에 닻을 내렸다.

/글=이동훈기자 dhlee@hk.co.kr 사진= 최흥수기자

● 해경들 바다생활

바다 위에 뜬 해양 경찰의 생활은 단순하다. 4시간 당직 근무에 8시간 대기가 맞물려 돌아가는데다 바다에 포박된 삶은 복잡함이 들어설 여지도 없다. 불법 조업 중국 어선과 밀입국 어선 단속에 늘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어선에 불이 나면 불을 꺼야 하고 조난자가 발생하면 두말없이 구조하러 가야 한다. 바다 위의 해경은 낭만을 즐길 여유가 없다.

흔들리는 배위에서는 책 읽기도 쉽지 않다. 적응이 안되면 멀미가 치솟는다. 해경들은 그래서 과자 부스러기와 몇 년 전부터 가능해진 위성 TV 시청으로 휴식시간의 대부분을 채운다.

4박5일, 날씨라도 나빠지면 그 이상의 시간을 꼼짝없이 배 안에 갇혀있어야 하는 해경들은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 하는디…."라는 말을 자주 한다. "육상 근무하는 동년배보다 빨리 늙는 것 같다"는 농담도 한다. 흔들리는 선상에 오래 있다 보니 무릎관절이 안 좋은 대원들이 많고 좁은 배 안 공기 탓에 기관지염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동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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