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군에 의한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의 진상규명은 한국인이 세계시민으로 참여하기 위한 작은 발걸음입니다."한홍구(韓洪九·43·사진) 성공회대 교양학부(역사학) 교수는 요즘 베트남 방문 준비에 분주하다. 베트남전 민간인학살 진실위원회 집행위원인 그는 내년 1월 중순 연구 주제의 보고(寶庫)나 다름없는 베트남 현지를 생애 처음으로 답사한다. 푸엔성에 건립될 평화역사기념관 준공식 참석차 1주일 가량 머물 계획인 한 교수는 "미라이 학살박물관 견학 등 민간인 학살의 실태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 사나흘 더 체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가 2000년부터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노근리 민간인 학살과 함께 국내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실천학문'을 추구하는 그의 학문적 자세에서 비롯됐다. 만주 항일독립운동사를 전공한 그에게 베트남전에서의 민간인 학살은 일본 만주군의 만행과 동일선상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는 강정구(姜禎求·56) 동국대 교수 등과 함께 본격 연구에 돌입한 뒤 1966년 2월 한국군의 학살의혹을 입증하는 주베트남 미군사령부의 각종 수사보고서와 20여 장의 흑백사진을 입수하는 성과를 올렸다.
"철들고 난 뒤에야 '월남에서 돌아온 새까만 김상사'가 고엽제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음을 알게 됐다"고 운을 뗀 한 교수는 "진실규명은 대다수 한국군의 명예회복은 물론 일본의 만행을 객관화 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현지 피해자들의 고통과 '가해자'국민의 괴로움을 함께 느껴야 하는 그의 마음이 편할 리 없다. "재작년 11월 서울시의회 별관에서 열린 심포지움 당시 참전용사단체 300여명이 발표중인 제게 욕설을 퍼부으며 협박했어요. 두렵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백발이 무성한 60대 노인들이 군복을 입은 모습에 서글픔도 느껴지더군요." 학교 강의 도중에도 그는 종종 참전용사의 자녀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는 사실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동료 교수들마저 '꼭 파헤쳐야 할 문제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할 때면 회의도 밀려온다.
그러나 진실을 피하지 않으려는 역사학자의 소신엔 굽힘이 없다. "베트남 전은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단언한 한 교수는 "베트남 답사 역사기념관 설립 기금마련에 힘을 쏟고 싶다"고 말했다.
/이준택기자 nagn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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