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전자는 구경하는 것으로 끝나야 하고, 감시자라면 어디까지나 공정한 감시자 역할에서 만족해야 할 것이다. 만약 구경꾼이 자기 기분에 도취되거나, 아니면 불순한 의도를 갖고 경기장에 뛰어 들었다고 가정해 보라. 이미 그 경기장은 혼란상 바로 그 자체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공평하고 엄정해야 할 감시자가 주제넘게 어느 한 쪽을 편들고 나선다면 이것 역시 온전한 판이 되기는 어렵다. 언론은 어디까지나 정치의 관전자이자, 감시자일 뿐이다.마치 요즘의 대통령선거판이 그런 모습이다. 엄정중립은 물론, 선거를 감시해야 할 일부 언론의 선거 개입 논란은 불행한 일이다. 스스로 정론이기를 포기한 천박한 저널리즘의 행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유감스럽게도 어느 누구는 안 된다는 노골적인 암시가 지면 곳곳에서 묻어 나는가 하면, 또 일부 TV는 편파 보도 시비로 피해를 입은 후보로부터 항의를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도 문제의 일부 언론사들은 한결같이 '공정한' 보도라고 우긴다. 구역질 나는 강변이 아닐 수 없다.
일부 언론의 선거개입 논란은 새삼스런 일이 아니다. 또 이들로부터 특정인 '대통령 만들기' 얘기가 나온 것도 어제 오늘이 아니다. '언론의 권력화'라고 할 수 있는 소위 제왕적 '언론 권력'의 선거 개입행위는 우리주위에서 어느새 상습화했다. 최근 서울에 있는 신문 방송의 현역 정치부장들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응답자 12명 가운데 10명이 "일부 언론이 특정후보나 정당에 편파적인 보도를 하고 있다"고 답했다는 기사는 우리를 당혹하게 한다. 응답자의 80%가 넘는 정치부 데스크가 일부 언론의 '편파적 보도'가 공정선거의 위해요인 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 아무개가 당선되든, 아니면 노 아무개가 선출되든 그것은 전적으로 유권자들이 선택할 문제다. 그런데 왜 언론이 나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고 어깃장을 놓을까.
특정후보를 지지하는 자사의 입장을 떳떳하게 밝히는 미국의 언론도 이렇지는 않다. 비록 지지후보를 밝혔을 뿐 후보에 관한 기사만큼은 조금도 치우치지 않는다. 저널리즘의 으뜸 덕목은 이처럼 공정성과 정직성이다. 선거법이 특정후보에 대한 지지의사를 언론이 밝힐 수 없도록 돼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일부 언론의 '일탈'시비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그러고도 이들은 능청스럽게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라고 한다. 새빨간 거짓말이다.
정확하게 이틀 후면 우리는 16대 대통령을 뽑는다. 향후 5년간 우리나라를 이끌고 갈 새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나라의 장래가 크게 좌우된다. 지금 우리에겐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난제들이 첩첩해 있다. 지도자를 중심으로 이를 슬기롭게 헤쳐가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에 따라 금세기 우리의 명운이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일부 언론의 선거 개입 논란은 어처구니 없다. 그야말로 유권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언론이 무슨 근거로 선거판에 젓가락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인가. 만약 신문이나 방송이 '정권 만들기'나 '편들기'를 한다면 그들은 스스로 언론이기를 포기했을 따름이다. 그들이 입만 열면 금과옥조처럼 읊조리는 공정선거에도 반한다.
우리는 지금 시대적 전환기에 있다. 기회는 엉금엉금 오지만 위기는 성큼성큼 온다고 했다. 유권자들의 선택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시점이다. 21세기 첫 대통령의 사명은 실로 막중하다.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확산되고 있는 작금의 반미정서를 수습하는 일이 화급한 과제라면, 북한 핵 문제는 장기적으로 풀어야 할 고난도 장애물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선진국 진입에 성공하느냐, 그 문턱에서 좌절하고 마느냐 하는 갈림길에 있다. 일부 언론의 선거 개입논란은 그래서 역사에 죄를 짓는 일이다. 선거 만큼은 유권자들의 자유로운 선택에 맡기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는가.
노 진 환 주필 jhr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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