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한국의 대표적인 철학자 열암(冽巖) 박종홍(朴鍾鴻·1903∼1976)의 탄생 100주년을 앞두고 그의 철학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활발하다. 서울대 철학과 교수로서 1968년 국민교육헌장 제정 참여, 70년 박정희 대통령 교육문화담당 특별보좌관이라는 열암의 현실참여 방식은 나치정권에 협력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처럼 적잖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그는 1세대 철학자로서 전통과 현대, 동양과 서양철학, 철학과 현실의 종합이라는 한국 철학의 지표를 제시하며 후학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 왔기에 그가 왜 박정희 정권의 유신체제를 정당화하는 데 참여했을까 하는 물음은 국내 철학계에서 쉽게 공론화하기 힘든 문제였다.이런 가운데 비판철학회(회장 양재혁)가 14일 성균관대에서 '박종홍 철학비판' 심포지엄을 열어 학계의 주목을 끌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양재혁(성균관대 철학) 교수가 기조발표를 맡고 홍윤기(동국대 철학) 김재현(경남대 철학) 이기만(성균관대 예술철학) 교수가 주제발표를 했다.
양 교수는 '박종홍과 그의 황국철학'이라는 기조발표에서 열암 철학의 핵심을 유년시절부터 배워온 유교철학의 중화(中和)의 논리에 있다고 규정하고 특히 정치 사회 경제 문제들을 배척하는 일제의 황국철학 교육 방식을 답습한 열암 철학의 영향으로 최근 인문학이 위기를 맞았다고 분석했다.
양 교수는 "가는 것이 오는 것이고, 부정이 긍정, 이것이 곧 저것이다(無極而太極, 往則歸)는 식의 형이상학은 곧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는 숙명론으로 이어져 기득권 지배체제의 옹호라는 결과를 낳았다"고 비판했다. 그는 열암 철학이 박정희 정권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것에 대해서는 "열암이 우민(愚民)들을 상지(上智)의 지도자가 보호 지도한다는 퇴계교육론의 핵심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열암의 영향을 받은 철학이 여러 분야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면서 "이로 인해 오늘날 철학은 정치, 경제의 이해 충돌을 외면한 채 공상(空想)의 인문학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국민교육헌장의 제정 과정을 분석한 '파시즘 문서로서 국민교육헌장'이라는 글을 발표한 홍윤기 교수는 열암이 박정희 정권의 요구에 따라 소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적극적으로 헌장 제정에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식민지 제국주의 지배체제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했던 열암이 해방 이후에는 국가와 민족의 현실을 끌어들여 철학함의 주제로 삼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남한 내부에서 자신의 권력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박정희가 만든 이데올로기 창작물인 반공 민주주의에 열암이 철학적 개념과 정당화의 논변을 적극적으로 부여한 것은 한국 현대 철학으로서는 큰 불행이었다고 평가했다.
심포지엄을 지켜본 한 교수는 "열암이 한국 현대 철학의 상징적인 인물이라는 점에서 열암 철학 비판은 개인적 차원을 초월한다"며 "이번 학술대회는 열암 철학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한국 현대 철학이 근대화 과정에서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점을 다시 한번 일깨워줬다"고 논평했다.
한편 후학들을 중심으로 한 열암기념사업회는 내년 열암 탄생 100주년을 맞아 열암 철학에 대한 정확한 소개에 초점을 맞춘 논문집 '현실과 창조'를 발간할 예정이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놓고 논쟁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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