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60대 후반 남자입니다. 친구들과 점심자리에서 누군가 노인들의 성생활을 그린'죽어도 좋아!'라는 영화를 화제로 삼았는데, 대부분이 그저 웃고 말았습니다. 상담자께서는 보셨는지요? 보셨다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기심도 생깁니다. (경기도 분당 이씨)
답>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려서 우연히 자기 부모의 성생활 현장을 보고 듣게 되는데, 이런 광경을 전문용어로는 원초경(原初景)이라 합니다. 아이들은 이를 보고 자칫 부모가 싸우는 것으로, 특히 어머니가 매 맞는 것으로 생각해 놀라기도 하고, 영문을 몰라 당황하기도 하고, 묘하게 흥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기 능력으로는 실현 불가능한 것에 샘도 나고, 굴욕감도 맛봅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대개 기억에서 사라지고 일부 사람에게만 '이 다음에 커서 내가 놀랬던 만큼 그들을 놀래 주어야지'라는 복수심으로 무의식에 남습니다.
문의를 받은 김에 상담자도 영화를 보았습니다. 공휴일 첫 회 였는데, 200석 좌석의 1/3이 찼습니다. 젊은 층은 열 명이 채 안되고, 초로기 남녀가 함께 온 경우가 압도적이었습니다. 매표소 직원 말로는 낮에는 50대 여성들이 그룹으로, 저녁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온다고 하더군요. 한 시간 좀 넘는 짧은 영화는 실화 주인공들이 배우로 나와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는데, 실제의 성생활을 처음부터 끝까지 담은 것 같은 장면이 나오더군요. 사랑과 성생활의 재연이 원기를 불러온다는 증거를 여기저기서 보여주는 것은 좋은데, 저의 눈에는 과장되고 희화화(戱畵化)한 장면이 몇 군데 있더군요.
불룩한 배, 늘어진 가슴, 앙상한 허벅지와 납작 엉덩이, 검버섯과 주름, 틀니, 짧은 무다리가 애처러울 정도로 사실적으로 비쳤습니다. 예술영화는 아닙니다. '성(性)은 노년에도 아름다워!'라는 기대를 걸고 온 젊은이들은 몬도가네식 괴이함에 질겁할 것이며, 원초경에 놀란 가슴을 지녔던 지난 날의 일부 아이들에게 이 영화는 통쾌한 복수를 맛보게 할 것입니다. 이제 보니 노친(老親)네들, 별 볼 일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영화는 노인 자신들이 보아서는 찡그릴 것이 별로 없고, 오히려 '아하, 저렇구나, 내가 너무 자신을 깔보았었구나'하는 느낌이 올 것입니다. 영어제목이 '죽기는 아직 억울해!'라는 이 영화는 노인건강을 북돋는 온건한 성영화로 보이기 때문에 선생께서는 자식들에게 들키지만 않는다면 부부동반으로 가 보시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서울대 의대 신경정신과 명예교수 dycho@dych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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