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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시니어]"해오름" 신문 이계숙·정용화·김경숙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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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보 시니어]"해오름" 신문 이계숙·정용화·김경숙씨

입력
2002.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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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호 논단은 대통령선거와 관련해서 써야겠지?""아무래도 결과를 보고 써야할 것 같아. 원고는 20일이나 21일쯤 넘길게."

"이번 호 가족탐방은 4대가 함께 사는 김씨 할머니네가 좋을 것 같아. 그 집 며느리가 직장도 그만두고 시어머니랑 시할머니까지 모시는데, 참하다고 소문났더군."

서울 노원구 북부노인종합복지관내 한 켠에 마련된 실버신문 '해오름' 사무실. 이계숙(68) 정용화(67) 김경숙(64)씨 등 돋보기를 쓴 60대 트리오는 요즘 연말 특집호를 준비하느라 수시로 '편집회의'를 갖는 등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전국 유일의 '노인들에 의한 노인들의 신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대선특집호를 꾸며보고 싶다는 의욕에서다.

'제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의미로 '해오름'이라고 이름 붙인 이 신문은 2000년 5월 세상에 선을 보인 뒤 독자층을 급속히 넓혀왔다. 2개월에 한 번씩 나오는 4페이지짜리 신문으로, '소식지'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1,000부 가량 찍어 북부노인종합복지관 주변은 물론 전국의 노인종합복지관, 관련단체등에도 뿌려지는 어엿한 전국지다. 또 논단·뉴스·생활정보 등 실버들이 원하는 내용을 그들의 시각에서 만들어 기사에 관한 문의가 지방에서도 올 정도로 가독성도 높다.

의약분업이나 이산가족 상봉문제 등을 노인층이 읽어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 쓰거나, 건강보조식품 사기피해, 결식노인문제 등 고령화와 관련된 시사문제를 직접 취재해 쓰기도 한다. 편집장을 맡고 있는 정용화씨는 "재미있는 기사가 나가면 전국에서 전화가 걸려온다"며 "남들이 모르는 건강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는 제보도 적지않다"고 전한다.

이들의 목표는 무엇보다 노인 독자들을 위한 차별화된 신문을 만드는 것. 시력이 좋지 않은 노인들을 위해 일반 신문보다 활자를 크게 하고 '건강백과' '마음의 지혜' '좋은 시어머니 되는 법' 등 노인에게 도움이 되는 코너를 마련했다.

'해오름'을 만드는 '할머니아닌 할머니' 기자들의 전직은 초등 교사. 정용화씨는 45년간 초등교사로 재직하다가 1999년 교감으로 명예퇴직했다. 매일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까닭에 한동안 의욕상실과 우울증으로 적잖이 고생했다. 집 근처 북부노인종합복지관에 나가기 시작한 것이 제2의 인생을 찾는 징검다리가 됐다. 이제까지 해 본 적이 없었던 장구나 에어로빅등을 배우면서 활기를 되찾았다. 그러나 단순한 취미생활 만으로 충족되지 않은 뭔가가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라고 생각하던 차에 복지관에서 실버신문 기자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복지관에서 함께 수업을 듣던 이계숙와 김경숙씨와 얘기해 도전했다. 두 사람도 역시 30∼40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교감까지 지낸 엘리트여성. 논단을 주로 쓰는 김씨는 초등교사로 출발하기 전인 60년대 행정신문에서 2년간 기자생활을 한 경력도 있다. 젊은 시절 같은 학교에 근무한 적도 있는 세 사람은 복지관에서 다시 만나 친 자매처럼 지내던 터였다.

나름대로 글재주를 자랑하던 세 사람이었지만 신문 만드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결선까지 올랐던 정씨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노인들이 쓰는 글이라 만연체가 돼버리기 일쑤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 경희대 학보사 기자들을 초청, '기사쓰는 법' 특강을 듣기도 했다.

노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기사 발굴, 원고청탁 등도 생각 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렵게 원고를 모으고 편집해서 만들어진 창간호를 대하면 그동안의 몸고생, 마음고생이 눈녹듯이 사라졌다. 특히 기사 말미에 붙은 '이계숙 기자' '정용화 기자' '김경숙 기자' 등 자신들의 이름을 보고는 이전까지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도 맛봤다. 신문기자가 된 걸 기념해 카메라까지 선물하면서도 "엄마가 구청장·국회의원과 인터뷰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던 이씨의 딸도 이젠 태도가 달라졌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고 지역사회에서 상당한 반향을 얻자 복지관에 비치된 신문을 외면하던 노인들까지 요즘은 신문 나오는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눈이 나쁜 노인들이 "손자에게 읽어 달라고 하겠다"며 신문을 챙겨갈 때는 이들 '할머니 데스크'들의 기쁨은 더욱 커진다. 세 명의 할머니 기자들은 "실버들이 기어들어가는 세대가 아니라 다시금 떠오르는 세대임을 알리는 것이 우리 신문의 목표"라고 말한다.

/김동선기자 ween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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