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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행정수도 이전, 쟁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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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행정수도 이전, 쟁점 아니다

입력
2002.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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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수도 이전이 과연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들어 낸 쟁점'이지 대다수 국민들이 절박하게 느끼는 문제가 아니다. 북한 핵과 반미감정 확산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운 가운데 여야가 행정수도 이전 공방에 매달리는 것은 아무리 선거운동 이라지만 한심한 일이다.행정수도 이전 논란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심각한 지경에 이른 수도권 집중을 해소하고 국토의 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해 수도권 기능을 분산해야 한다는 것은 중대한 국가적 과제다. 그 과제가 중요한 만큼 충분한 검토와 논의를 거치지 않고는 시행할 수도 없고 시행해서도 안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대선을 며칠 앞두고 여야후보가 토론으로 승부를 가릴 문제가 아니다.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를 대전으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들고 나온 것은 충청권 민심잡기 전략이다. 그는 행정수도를 옮겨야 하는 절박한 이유를 열거하고 있지만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충분히 연구한 흔적이 없다. 행정수도 건설 비용도 현실성이 낮아 보이고, 행정부 국회 청와대를 모두 옮기겠다는 말도 성급하게 들린다. 그의 주장은 주먹구구에 가깝다.

한나라당의 대응 역시 주먹구구 수준이고, 민심을 호도하려는 유혹에 빠져 품위까지 잃고 있다. 행정수도를 이전하면 수도권이 공동화하고 수도권 경제가 붕괴하고 부동산 값이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은 과장된 것이다. '부동산 값 폭락'을 들고나온 것은 특히 민망하다. 수도권 유권자들을 집 값 떨어진다는 말로 겁 주겠다는 의도가 드러난다.

한나라당이 이렇게 대응하는 것은 행정수도 이전 공약이 충청권 민심을 움직인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또 민주당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양당 후보가 토론을 하자고 요구한 것은 부동산 값 폭락 주장이 수도권 민심에 영향을 준다고 분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부 민심이 그렇게 흔들릴지 몰라도 대다수 유권자는 바보가 아니다.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더라도 당장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국의 대통령이 아무리 제왕적인 권력을 가졌다 한들 행정수도 이전을 명령할 수는 없다. 방대한 이전 방안을 마련하고 이전에 따른 문제점을 검토하고 수많은 논의를 거쳐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노 후보는 자신이 당선되면 정계개편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했지만 현재의 의석을 감안할 때 국회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그런 사정을 훤하게 알고 있다. 한나라당이 만일 대선에서 패한다면 '철새'들 중 일부가 다시 날아가겠지만 한나라당은 여전히 다수의석을 가진 제1당의 위치를 지킬 것이다. 한나라당이 원치 않는다면 행정수도 이전을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상황이다.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공방전은 지루하다. 양측 모두 이번 건을 이용해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겠다는 전의가 불타 오를 뿐 논의를 전개해 갈 능력이 없다. 행정기능 분산이라는 거대한 과제에 대해 코끼리 다리 만지는 주장만 늘어놓고 있다. 토론이 무산된 것은 잘 된 일이다. 양당 후보가 한 두시간 토론해 무슨 소득이 있겠는가. 대선전략에 의해 본질이 왜곡될 위험만 높아질 뿐이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오는데 어떤 후보도 마음에 안 든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A후보가 싫어서 B후보를 찍을 생각이지만 과연 B후보가 대통령 감인지 확신이 안 선다는 사람도 많다.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후보를 찾지 못한 채 투표장으로 가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에 확신을 가지고 선택했던 후보들이 과연 끝까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던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음에 꼭 들지는 않더라도 상대적으로 나은 후보를 선택해서 그와 함께 앞으로 5년을 걸어가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승패를 예상하기 힘들만큼 선거전이 치열해 지고 있다. 이런 판세에서는 유권자들의 한 표 한 표가 더욱 중요해 진다. 쟁점 아닌 것을 쟁점으로 오해하고 흔들려서는 안 된다. 누가 신뢰할 만한 후보인지, 그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어떤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지 곰곰 살펴 보면서 가장 나은 후보를 골라야 한다. 시간이 없다. 앞으로 사흘 남았다.

/본사 이사 msch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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