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큐리텔의 송문섭(宋文燮· 50) 사장은 전형적인 이공계 출신 최고경영자(CEO)이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 팬택&큐리텔 본사 사장실에서 만난 송 사장의 첫 인상은 무테안경에 키 180㎝의 호리호리한 체격이 중견기업 CEO라기 보다는 대기업이나 국책 연구소 연구원에 가까웠다.하지만 그의 이력서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에서 송 사장 만큼 다양한 경력을 가진 CEO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다. 미국 스탠포드대 전자공학 박사 출신인 송 사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에서 임원과 CEO를 거쳤다. 1989년부터 1999년까지는 삼성그룹 회장 비서실 등에서 근무하며 삼성의 통신사업 전반을 조정했으며, 1999년부터 지난해 12월까지는 하이닉스반도체로 이름을 바꾼 옛 현대전자의 휴대폰 사업을 총괄했다.
송 사장은 지난해 하이닉스 반도체가 자구노력 차원에서 휴대폰 사업부문을 팬택으로 넘기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사람 욕심'이 많기로 유명한 팬택 박병엽 부회장이 "송 사장이 그만두면 큐리텔 인수를 포기하겠다"며 극구 만류하는 바람에 결국 사의를 접을 수 밖에 없었다.
송 사장은 인터뷰 내내 자신은 CEO라기 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공학도라고 강조했다.
송 사장은 "팬택&큐리텔이 최근 국내 최고의 카메라폰을 개발해 시장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처럼, 기본에 충실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풀리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주위의 우려에도 불구, 지난 9월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장악한 국내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팬택&큐리텔은 최근 월간 기준 시장점유율이 12%에 달하고, 내년에는 연간 15%의 점유율을 목표로 할 정도로 초기 시장진입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송 사장은 그의 전공인 휴대폰 기술과 우리나라의 휴대폰 경쟁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 누구보다 자신감이 넘친다. "휴대폰은 앞으로 최소 5년간은 한국 경제를 이끌어갈 성장동력이며, 전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도 현재 25%에서 50%까지 올라갈 수 있습니다."
송 사장은 휴대폰이 반도체와 달리 전후방 연관효과가 큰 사업이면서도 한국인의 기질적 특성이나 시장구조상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비록 일부에서 과소비라는 지적이 있지만, 유행에 민감한 우리나라 국민들은 최고급 휴대폰을 2년도 안돼 바꾸기 때문에 전세계에서 한국 휴대폰 업체만큼 신형 휴대폰을 빨리 만들어내는 업체가 없습니다."
송 사장은 다만 우리 휴대폰 업계의 중장기적 기술연구가 부족한 점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시했다. 그는 "제품 하나하나만 보면 우리나라 제품이 노키아 제품보다 낫다"면서도 "중장기적인 기술변화에 적응하는 면에서는 연구인력이 1만명에 달하는 노키아가 삼성, LG 등 국내업체보다는 우월하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휴대폰은 기술중심의 '경박단소(輕薄短小)'로 진화했으나, 이제부터는 비디오폰, 스마트폰, PDA기능을 갖춘 휴대폰 등 고객의 요구에 맞춰 다기능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게 송 사장의 예상이다.
송 사장은 "대주주인 박병엽 팬택 부회장과 협의가 끝나 내년 가을께 팬택& 큐리텔을 증권거래소나 코스닥에 상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박 부회장이 회사 공개에 따른 이익을 직원들과 공유한다는 방침에 흔쾌히 동의해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팬택&큐리텔은 회사 공개로 유입될 1,000억원 가량의 자금을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송 사장은 "팬택&큐리텔 광고에 가수 윤도현이 기타를 치며 등장하는 것처럼, 70년대 초반 대학을 다닐 무렵 익힌 기타를 치는 것이 바쁜 일과 중에서도 유일한 낙"이라고 말했다.
/글=조철환기자 chcho@hk.co.kr
사진=류효진기자
■팬택&큐리텔은
휴대폰 전문업체인 팬택&큐리텔은 현대전자(현 하이닉스반도체)의 정보통신부문이 모태다. 현대계열 시절 걸리버, 네오미 등 인기 휴대폰을 출시하면서 1999년에는 시장 점유율이 15.56%에 달해 업계 3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 하이닉스반도체의 경영난에 따른 투자축소, 우수인력 이탈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2001년에는 내수 시장 점유율이 4%대로 하락했다. 2001년말 박병엽 팬택 부회장이 KTB네트워크와 공동으로 경영권을 인수함으로써 회사가 거듭 태어나게 됐다. 그동안 회사이름이 현대큐리텔→큐리텔→팬택& 큐리텔로 바뀌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팬택과 KTB가 경영에 나선 후 사업 안정화, 투자여력 확보 등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 지난 9월 독자 브랜드로 신제품 2종을 출시하면서 국내시장 공략에 나섰다.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초당 33프레임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폰(큐리텔 PD-6000)을 출시, 주목을 받았다.
팬택 관계자는 "올 10월중 SK텔레콤이 시판한 전체 단말기중 팬택&큐리텔 제품이 5만5,000대로 12%를 차지, 삼성전자(23만4,000대· 50%) LG전자( 9만3,000대· 20%)에 이어 3위를 기록하는 등 내수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말 현재 KTB네트워크가 전체 지분의 79.16%를 갖고 있으며, 우리사주조합과 송문섭 사장의 지분은 각각 19.33%와 1.13%이다.
지난해에는 5,649억원의 매출과 149억원의 순이익을 냈으며, 올 상반기에는 2,178억원의 매출과 100억9,000만원의 순익을 기록했다.
■송문섭 사장은 누구
-1952년 서울출생
-1974년 서울대 전자공학과 졸
-1983년 미국 Communication Corp 이사
-1984년 미국 스탠포드대 전자공학 박사
-1989년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이사
-1999년 현대전자 부사장
-2001년 현대큐리텔 대표이사 사장
-2001년12월 팬택& 큐리텔 대표이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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