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실시되는 선거는 21세기 최초의 대통령 선거이다. 향후 한국정치의 향방을 내다볼 수 있는 중요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한국 현대 정치사를 회고해 보면,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을 공정하고 정규적인 선거에 의해 선출하는, 이처럼 간단한 민주적 관행을 습득하고 실천하는 데 무려 40년이나 소요되었다. 1985년 2·12 총선 때 돌풍을 일으킨 신한민주당의 유일한 무기는 국민들에게 '대통령을 체육관에서 뽑을 것인가, 아니면 직접 내 손으로 뽑을 것인가?'라는 소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후 2년 동안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라는 무기는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정치판을 뒤흔들었다.
그 결과 유신시절에 대학에 들어간 나는 34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대통령 선거에서 투표를 해보는 정치적 성인식(成人式)을 올렸다. 그리하여 군사정권 집권 이후 33년만에 처음으로 문민 대통령을 경험했고, 정부 수립 후 50년만에 최초로 선거에 의한 정권 교체를 목격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이 20∼30대의 신세대에게는 별로 감격스럽지 않은 듯하다. 군부 독재의 경험이 별로 없는 그들에게 공정하고 규칙적인 선거는 별로 신선할 것도 없는 정치적 요식행위로 비치는 듯하다. 2000년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의 낙천·낙선 운동에 대한 네티즌들의 열화 같은 호응에도 불구하고 전체 투표율이 63.9%인데 반해 20대의 투표율은 그저 37%에 불과했다.
기성 세대가 젊은 세대들에게 과거 어려운 시절 이야기를 하면 그들은 으레 식상해 한다. 예를 들어, 잘 차려진 식탁에서 반찬투정을 하는 자식들에게, 부모들 어린 시절에 못 먹고 못 살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이런 음식은 제사나 생일 때 먹어보던 것이다', '부잣집 애나 먹던 것이다' 등의 얘기를 하면 '또 그 얘기야!', '한 번만 더 들으면 100번째야!'하는 반응이 돌아온다. 아이들은 햄버거, 피자, 튀김 닭 등을 더 즐겨 먹는다.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도시락 반찬은 늘 단무지, 멸치볶음, 콩자반, 김치 등이었다. 어쩌다 쇠고기 장조림이나 소시지 등이라도 싸 갖고 가는 날에는 급우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곤 했다.
생각을 돌려보면, 대통령 선거가 기성 세대에게는 남다른 감회에 젖는 뜻 깊은 행사이겠지만, 요즘 신세대들에게는 그저 덤덤하게 느끼는, 때로 식상하게도 여기는 그런 장조림, 소시지 반찬이 아닌가 싶다.
기성 세대로서는 한편으로 민주주의를 외치면서 다른 한편으로 선거에 무관심한 젊은 세대들이 저으기 불만스러울 법도 하다. 장조림이나 고기 반찬을 외면하는 그들을 못마땅해 하듯이. 하지만 그들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이 우리의 정치 현실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에도 정치판은 선거만 정기적으로 치러질 뿐이지 여야가 차기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소모적인 정쟁-이른바 북풍, 세풍, 총풍, 병풍 등과 관련된 논쟁들-에만 몰두해 왔을 뿐이었다. 그처럼 구태의연한 정치판을 차려 놓고 신세대에게 '숟가락을 들라'면서 투표 참가만을 호소하는 일은 더 이상 능사가 아닌 듯 싶다.
월드컵 열기가 한창일 때, 한국 축구 선수들의 화끈한 경기에 붉은 악마로 무장한 온 국민이 열광적으로 화답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3김 시대를 청산하고 세대교체의 의미를 지닌 이번 대선을 통해 탄생할 차기 정부는 진부하고 소모적인 정쟁에만 몰두하지 말고, 부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정치를 선보였으면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민주주의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축구 팬들이 K리그에 관심을 쏟듯이, 붉은 악마의 주축이었던 20∼30대들 역시 비판적 애정을 갖고 정치판 K리그에도 적극 참가해야 할 것이다.
신세대들이여, See U @ K리그!
강 정 인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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