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12월14일 스페인 시인 비센테 알레익산드레가 마드리드에서 작고했다. 향년 86세. 20세기 스페인 문학사에서 알레익산드레는 페데리코 가르시아 로르카, 라파엘 알베르티, 페드로 살리나스, 호르헤 길리엔 등과 함께 이른바 '1927년 세대'에 속한다. 이 세대의 동료들처럼 알레익산드레도 1930년대에 초현실주의 세례를 받았고, 스페인 내전기에는 공화파에 속했다. 그러나 그 세대 동료들 대부분이 내전 이후 스페인을 떠난 것과는 달리, 알레익산드레는 조국에 남았다. 파시즘을 견뎌낼 만큼 신경줄이 튼튼해서가 아니라, 청년기부터 앓았던 신장병이 그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1977년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도, 알레익산드레는 기력이 없어 시상식에 참가하지 못했다. 병과 고독은 이 '사랑과 죽음의 시인'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살았다.독재자 프랑코는 알레익산드레를 좋아하지 않았지만, 얼마간 그의 시집들을 금서목록에 올렸던 것 말고는 이 저명한 시인을 내버려 두었다. 실상 내전 중에 자기 부하가 가르시아 로르카를 죽인 것 하나만으로도 이 파시스트는 조국의 문학에 충분히 패악을 부린 터였다.
동료 시인 후스토 호르헤 파드론이 대신 읽은 알레익산드레의 노벨상 수상 연설 한 대목.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견자(見者)이고 예언자입니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말할 나위 없이, 꼭 미래에 대한 예언이 아닙니다. 그 예언은 과거와 관련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예언입니다. 빛을 비추는 사람으로서, 빛을 겨누는 사람으로서, 인류의 징벌자로서, 시인은 참깨씨의 소유자입니다. 그 참깨씨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그의 운명의 언어가 되는 것입니다."
고 종 석 /편집위원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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