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일이 가까워오자 대선광고가 한층 신랄하고 격렬해졌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측의 공격적 문구다. <텅 빈 서울, 속 공약. 민주당 후보는 의료대란과 교육대란, 부채대란도 모자라 이제 나라 뒤엎는 서울대란을 꾸미고 있습니다.> 노무현 후보 측도 같은 소재로 역공을 펴고 있다. <혹세무민, 거짓말로 국민을 속이지 마십시오. 숨 막히는 서울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행정수도를 충청권으로 천도(遷都)하는 것은 간단치 않은 일이다. 역사적 무게를 지닌 주제에 맞춰 '혹세무민'이라는 옛날식 한자어를 사용한 듯하다.■ 혹세무민일 수 있지만, 후보의 관상에 관한 책이 나와 흥미를 준다. 대학원 교수가 펴낸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는 관상학을 제왕학이라고 부른다. 책 속에서 '정통의 맥을 잇고 있다'는 한 술사의 관상학을 간략히 인용해 보면, 이 후보는 독수리와 매의 중간 얼굴이다. 독수리는 높은 곳에 둥지를 튼다. 대권을 잡으려면 밑으로 내려와 서민의 사정을 알아야 한다. 노 후보는 표범과 비슷한 시라소니다. 시라소니의 습성은 독립독행이다. 고졸 학력을 가지고도 기죽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혹세무민,> 텅>
■ 1884년 미국 대선은 험악했다. 제임스 블레인과 그로버 클리블랜드 간에 저질 캠페인이 난무했다. '블레인, 블레인, 제임스 블레인. 메인주에서 온 천하의 거짓말쟁이.' 사생아가 있는 클리블랜드를 겨냥해서는 '엄마, 엄마, 아빠는 어디 갔어요? 백악관에 갔지. 하하하'라는 천박한 문구가 동원되었다. 저질 네거티브 캠페인의 극치라 할 만하다. 4·19혁명을 불러온 1960년의 우리 대선도 만만치 않았다. '죽나사나 결판내자!'는 민주당의 비장한 도전에 자유당은 '트집마라! 건설이다'라고 응수하고 있다.
■ 선거 캠페인에 관한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유권자는 이중적 태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정책 광고의 중요성은 인정하나 읽지는 않는다. 대신 폭로 광고에는 관심이 많기 때문에 건드리면 바로 반응이 나온다. 그래서 국내외에서 네거티브 캠페인의 비율이 점점 높아 가고 있다. 인간본성에 회의와 비애를 느끼게 되는 자화상이다. 비방성 광고의 범람은 유권자의 선택을 도와주기보다 방해한다. 그럴수록 개인의 소신이 중요하다. 정치의 흐름을 읽고 주관적 안목을 길러야 한다.
/박래부 논설위원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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