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민은 어떤 선거보다 중요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13일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북한의 조합주의(Corporatism), 일인독재 속의 관료적 권위주의'를 주제로 특강을 가진 브루스 커밍스(59) 미국 시카고대 석좌교수는 최근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 정세와 관련, 한국민들에게 대통령 선거가 갖는 의미를 강조했다.
강연 후 호암교수회관에서 기자를 만난 커밍스 교수는 "조지 W 부시 미국 정부와 북한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매우 위험한 순간에 직면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최근 한반도 주변 정세가 급격히 냉각한 원인은.
"미국이 그 동안 북한의 유화 제스처에 답하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북한은 '정치적인 사과'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는 '권위적 국가'(country of dignity)이다. 올해 남한에겐 서해교전, 일본에겐 납북자에 대해 한 차례씩 매우 중요한 사과를 할만큼 태도를 바꿨다. 반면 미국 정부가 북한과의 문제를 외교력보다 군사력에 의존해 풀려고 했다. 북한도 제네바합의의 문구 자체만 따지면 잘못한 게 없지만, 핵무기 개발을 하지 않겠다는 제네바합의 정신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1994년 핵 위기 상황과 어떻게 다르나.
"이번은 두 번째 핵협상위기라 미국이 예전과 같은 조건으로 북한과 합의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지옥에서 불에 타 죽을 대상으로 쓰이는 '악의 축'이라고 표현하거나, '미워하다(hate)'는 말 대신 '혐오하다(loathe)'라는 말을 쓸 정도로 외교적으로 미숙하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 장관처럼 공개석상에서 공격적인 말만 일삼는 외교 전문가들에게 휘둘리는 것도 문제다. 미국이 내년 1∼2월께 이라크를 침공하고, 그 전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면 북한 핵문제를 군사적으로 해결할 가능성도 있다."
―신의주 경제특구가 무산된 후 북한이 경제개방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동아시아에서 경제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은 2년 전만 해도 빈부격차와 부정부패 등 부정적인 면이 부각됐지만, 그 이후로 지속적인 성장을 하고 있다. 북한도 2000년부터 경제개방을 위해 이탈리아, 캐나다, 오스트리아, 필리핀 등과 관계개선에 주력해 왔지만,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개방을 두려워 하는 것 같다."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한국 내 반미감정이 광범위하게 퍼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런 시위가 미군철수로 이어지지 않을까 경계하고 있는데.
"한국민들의 평화적 촛불시위는 한국 정부의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도 비극적인 이번 사건에 대해 반드시 직접적인 사과를 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서울 한복판에 자리잡은 미군기지의 이전과 함께 통일 후 미군의 완전철수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러시아와 중국은 한국을 침공할 의사가 없기 때문에 미군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SOFA 개정에 대한 입장은.
"안타까운 것은 한국전쟁 후 미군이 한국에 계속 주둔해 왔기 때문에 SOFA 규정을 바꾼다고 해서 한미간에 평등한 관계가 당장 정립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 수정판을 낼 계획은 없는가.
"자료의 한계 때문에 20년 전에는 누가 썼더라도 그런 논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소련 붕괴 후의 자료를 활용해, 강의교재로 쓰일 300∼400쪽의 책으로 다시 펴낼 생각이다. 이르면 내년 봄께 나올 것이다. 87년 이후 북한을 방문한 적이 없었는데, 내년 봄께 북한을 다시 찾고 싶다."
/글=정원수기자nobleliar@hk.co.kr
사진=홍인기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