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무신과 돈봉투, 무더기 투표함, 부재자투표 부정, 이러한 용어들이 1960년대와 70년대의 선거에 단골로 등장하는 용어였다. 그나마 72년의 10월유신 이후 대통령선거는 한참동안 일반인과 무관한 것이 되어버렸다. 나의 기억 속에서 가장 익숙한 대통령은 아직도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 등교하면 교실에서도 태극기와 함께 나란히 붙어있던 그의 사진을 보아야 했다. 또한 어린 시절부터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대통령은 줄곧 한 사람이었으므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뇌 당한 셈이다. 비극의 10·26 이후에도 대통령 앞에 다른 이름이 오르는 것이 한참동안 어색했었다.대통령을 뽑기 위해 투표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회는 그 이후로도 7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투표권은 성인이 되었음을 인정 받고 이 나라의 당당한 국민이 되었다는 증표이다. 난생 처음 나라의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데 내 한 표를 던질 수 있었던 그 때의 감격은 신선했다. 여의도광장으로, 보라매공원으로 후보의 얼굴을 보고 연설을 들으러 갔던 인파들이 그 감격을 대변해 주었다.
투표일이 일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이번 대선이 다가오면서 유난히 달라진 점이 있다면 주위의 모임에서 선거에 대한 화제를 거의 올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들 일부러 피한다는 인상을 줄 정도로 애써 무관심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관심없다는 표정들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누가 되건 상관없다는 일종의 패배주의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것은 국민의 손으로 뽑았던 대통령도 사람만 바뀌었을 뿐 진정으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는 실망과 허탈감에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지지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해 고민하거나 아예 투표를 하지 않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 원인을 따져보면 특정 후보가 내세우는 모든 정책을 마치 패키지 상품을 사는 것처럼 한꺼번에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자신이 원하는 후보일 경우에도 정책 결정에 일반 유권자가 참여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태평성대를 이르는 말로 사용하는 요순시절은 "임금이 나에게 무슨 필요가 있는가"로 끝나는 격양가(擊壤歌)가 불려졌던 때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물론 무엇보다도 대통령은 대한민국이라는 배를 무사하게 다음 항구에 닻을 내리고 안전하게 정박할 수 있도록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물이 새어 들어올 수도 있고, 암초에 부딪칠 수도 있으며, 난파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 때의 번영을 구가하고 천연자원도 풍부한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오늘날 채무불이행을 선언하는 신세가 된 데는 지도자의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수많은 나라의 운명이 국정책임자에 따라서 달라졌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이다.
다음으로 대통령은 당선되기 전과 당선된 이후가 일관되어야 한다. 더 이상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어서는 안되겠다. 또한 국민들에게 한 표를 부탁하던 때의 마음가짐과 표정을 바꾸어서는 안 된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임기 동안에 모든 것을 다 이루려는 조급증을 갖지 말고 여유를 가져야 한다. 역사는 한판승으로 끝나는 깜짝쇼가 아니다.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달라질 수는 없다. 다음 세대에게 조금 더 나은 우리나라를 물려주는데 기여할 수 있으면 된다. 퇴임 후에도 존경받을 수 있는 대통령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아직도 대선 과정에서 난무하는 흑색비방을 비롯해서 풀어야 할 숙제들이 많다. 그렇지만 우리 국민의식도 전과는 많이 달라졌다. 적어도 고무신이나 막걸리에 넘어가 표를 던지는 유권자는 없고 투표함을 바꾸는 일 따위는 없을 만큼은 우리 민주주의도 성장한 것이다. 이상적인 최선의 후보가 없다면 차선의 후보에게 투표하여, 뽑고 나서 후회하지 않을 지도자를 심사숙고하여 결정해야겠다.
박 지 훈 경기대 인문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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