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스님이 스승의 가르침을 어긴 벌을 받아 등에 나무가 돋은 물고기로 환생했다. 스승을 다시 만난 물고기가 잘못을 빌자, 스승이 물고기의 몸을 벗어나게 해줬다. 등의 나무가 남아 물고기의 형상이 되어 수행하는 사람들을 경계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차창룡(36·사진)씨가 세번째 시집 '나무 물고기'(문학과지성사 발행)를 펴냈다. 스승의 용서로 목어(木漁·나무 물고기)가 된 것으로 만족했어야 했는데, 욕심은 새롭게 자란다. 목어는 용이 되고 싶어서 몸이 피로 붉게 물들 때까지 용문(龍門)을 뛰어올랐고, 머리는 용이 되었지만 몸뚱이는 물고기로 남았다. 용이 되지 못한 물고기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낀 탓이었다. 목어의 유래로 시작되는 산문시 '선암사 목어'의 내용이다. 욕심에 정직해 '물고기와 나무와 용의 몸을 한꺼번에 짊어진 나의 몸은 한껏 고달프다'. 그 고(苦)는 인생의 본질이다. 차씨가 새 시집에서 내보이는 주제이기도 하다.
욕망의 한 지점을 넘어서는 순간 고통이 시작된다는 것, 고통이란 피투성이가 되도록 욕망으로 치달음을 가리킨다는 것, 욕망에 이르고서도 구차한 정에 걸려 넘어져 완전하게 움켜쥐지 못한다는 것. 차씨의 최근 인도 기행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부분이다. 그는 시체를 화장해 뼛가루를 강물에 띄우고 그 물로 밥을 지어먹는 나라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서 욕심으로 고통스러워 하는 인간들이 '진실로 이슬과 같은 생명들'이며 '훅 불면 비틀거렸고, 눈만 깜박거려도 저세상을 왔다갔다 했다'('이슬'에서)는 것을 알게 됐다.
이 깨달음에서 멈춰섰다면 차씨의 시는 수많은 인도 기행자들의 한숨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는 그러나 고통의 생을 따뜻한 웃음으로 안는 지점에서 시를 쓴다. 첫 시집에서부터 '똥'의 역설을 화두로 삼아온 그는 허무의 나라 인도에서도 '꽃처럼 향기로운 똥'을 본다. 일찍이 헛된 것을 알아버리고도 그 쓸쓸한 심경을 붙잡아 유쾌한 통찰로 바꿔놓는다. 시체를 태워 내려보내는 강가에서 사람들은 똥을 눈다. 똥은 사람이 먹은 것의 시체다. 인생은 계속해서 고통을 밴다. '사람들은 강변에 나와 엉덩이를 내놓고/ 알을 까고 있다// 희한하게도 그 알 주워먹으면/ 강물과 햇볕과 바람과 돼지와 소와 개/ 모든 순례자들 임신하니// 돼지는 돼지를 잉태하고/ 개는 개를 잉태하고/ 사람은 사람을 잉태하고'('트리베니 가트에서 누는 똥'에서).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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