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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선택" 권인숙 / "나의 가장 절실한 선택은 여성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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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적 에세이 "선택" 권인숙 / "나의 가장 절실한 선택은 여성학"

입력
2002.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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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인숙(權仁淑·38)씨에게는 숙명 같은 사건이 따라다닌다. 1986년 일어난 부천서 성고문 사건. 이 사건으로 개인적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처를 받았지만, 그와 별개로 그는 정권의 부도덕성을 폭로한 투사로 공인받게 된다. 그 뒤 권인숙은 언제나 사회의 공공적 영역에 있었고 그 이름이 주는 의미 또한 각별했다. 그러나 그는 1994년 미국으로 떠났다. 사명의식이나 사회적 공명감 때문이 아니라 여성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순전히 개인적 이유 때문이었다. 석사, 박사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지금은 플로리다주립대에서 여성학을 가르치는 교수가 돼 있으니 목적은 이룬 셈이다.'선택'(웅진닷컴 발행)은 남다른 곡절을 겪었던 젊은 시절부터 교수가 된 최근에 이르기까지, 경험하고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느끼고 생각한 자신의 이야기를 적은 그의 첫 에세이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주인공이 아니라, 개인 권인숙의 이야기를 적고 있는 것이다.

책의 출간과 자료 수집을 위해 일시 귀국한 그는 "여성학 공부는 20대 이후 내가 내린 가장 적절한 선택"이라고 말한다. 운동에 뛰어들고 공장에 들어가고 대학을 그만 두고, 성고문 사건을 폭로하고 출소 후 노동단체(노동인권회관)를 설립하고…그 모든 것은 그가 선택은 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그가 몸담고 있던 운동권의 흐름, 명분이 더 강하게 작용했다. 그는 그래서 "나의 20대는 집단의 행복을 위해 개인이 사라진 불균형의 시기"라고 말한다.

여성 문제에는 늘 관심이 많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혼생활에서, 사회생활에서 남녀가 왜 달라야 하고 달리 취급받아야 하는지가 고민거리였다. 그러나 주변의 시선은 싸늘했다. "여성문제를 이야기하면 진보적 사람들조차 나를 이기적으로 보거나 민주화나 통일, 노동문제 등 더 중요한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분위기에서 그런 주장을 거부하기가 어려웠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릅니다. 세상을 보는 눈을 집단이 결정하고 개인은 그것을 그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지요."

노동운동가, 민주투사라는 사회적 이름을 접은 채 서른의 나이에 선택한 미국 유학은 그래서 적잖은 고통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나의 삶에 대한 예의를 찾은 느낌이고 내가 나를 믿어도 좋을 이유가 생겼습니다."

그러나 미국 생활은 그리 쉽지가 않았다. 특히 영어 때문에 겪은 열등감과 상처는 아주 크다. "겨우 책 읽을 정도의 실력으로 건너갔기 때문에 말을 알아듣고 의사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도 영어에 대한 자격지심 때문에 교수로서의 권위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들 정도이지요."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부모에게 아이를 키우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권인숙씨도 마찬가지다. 강의 시간 이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열한살 난 딸 강이와 함께 보낸다. 학술회의에도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아이에게 누구를 본받으라고, 누구처럼 되라고 특별히 주문한 것은 없다. 다만 세상을 여러 측면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었으면, 유머감각이 있었으면, 열린 문을 잠깐 잡아주고 무거운 물건을 들 때 거들어줄 정도의 작은 배려라도 있었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책에는 그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온다. 낳고 길러준 부모님이야 당연히 가장 고마운 존재지만 1990년 폐암으로 세상을 뜬 조영래(趙英來) 변호사는 두고두고 생각나는 사람이다. 조영래 변호사는 부천서 사건의 1심 변론 요지와 고발장 그리고 당시 사건의 진상을 알리는 많은 글들을 썼다. 변론 때는 눈물도 많이 흘렸다. 면회도 자주 와 반나절, 한나절 세상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젊어서 놀아"라고. "너무 엄숙하고 시대가 주는 무게에 눌려 살던 때였어요. 거기에만 얽매이지 말고 젊은 시절에 다양한 경험과 다양한 즐거움을 누리라는 뜻이었지요."

권인숙씨는 낡다 못해 일부는 떨어지기까지 한 조영래 변호사의 구두를 보고 그때 그의 생계를 걱정하기도 했다. 권인숙씨는 출소 후 고향 원주에 내려가 있었는데, 조영래 변호사가 중고차를 몰고 찾아온 것을 보고 걱정을 접었다고 한다.

권씨는 미군 장갑차 사건을 규탄하는 최근의 시위와 관련, "국가간 관계를 힘의 논리로만 지속시키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라고 조심스럽게 해석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형에 대해서는 "외모를 통해 사람을 차별하는 외모지상주의 문화를 문제 삼아야지 성형에 관심 갖는 개인을 탓할 일은 아니다"고 주장한다.

책은 이밖에 그가 TV 드라마에 탐닉하고 미남배우 장궈룽(張國榮)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담음으로써 우리가 생각한 권인숙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권씨도 "책을 읽은 독자들이 나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가 바뀌었다고들 이야기 한다"고 말한다.

지난 학기 여성학개론과 '아시아여성노동자와 세계화'를 강의한 권인숙씨는 새 학기부터는 여성학 개론과 '여성과 군사주의'를 가르친다. 개인적으로는 우리나라의 지역주의가 여성에 끼친 영향에 대해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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