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부지런한 연출가라도 1년에 연극 다섯 편 올리기는 힘들다. 돈 마련도 어렵지만, 그만한 스태미너를 발휘하려면 녹초가 될 게 뻔하다. 그런데, 내년에 연극 인생 30년을 맞는 채윤일(56)이 내년 1월부터 9월까지 무려 8편을 공연하는 사건을 준비 중이다. 자신이 그동안 연출한 대표작 5편과 신작 3편을 잇달아 올리는 고된 작업이다."하면 얼마나 하겠어요. 1주일 밤샘 해도 끄떡없었는데, 이젠 체력이 달려서 연습 마치면 지쳐요. 피 튀기게 연극할 수 있는 나이는 길어야 2년 남았다는 생각에 죽기 살기로 한 번 달려들어 마지막 불을 사르기로 작정한 거지요. 그 다음엔 어린이연극을 할 겁니다."
사뭇 비장한 각오다. 이를 위해 자신의 전재산인 24평 짜리 아파트를 잡혀 은행에서 1억 5,000만원을 대출 받고 대학로극장을 1년간 통째로 빌렸다. 연극 때문에 결혼도 포기한 그가 이런 '사고'를 저지르자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카지노에서 하룻밤에 1억원 날리는 사람도 있는데, 하고 싶은 일에 이만큼 쓰는 것 쯤이야."
우리 시대 대표적 연출가의 한 명으로 꼽히는 그는 1972년 연출가 임영웅의 극단 산울림 연출부에서 공식적인 연극 인생을 시작했다. 번역극이 주류이던 1976년, '우리의 이야기를 우리의 목소리로' 라는 슬로건 아래 극단 쎄실을 만들어 창작극을 꾸준히 선보여왔다.
지난 26년 간 쎄실에서 그가 연출한 작품은 7명 작가의 16편. 거기에는 '채윤일 하면 잔혹극'으로 통하게 만든 이현화 작 '카덴차' '산씻김' 외에 이윤택의 '오구―죽음의 형식' '불의 가면―권력의 형식', 조세희의 '난장이가쏘아올린 작은 공' , 올해 11월 공연작인 이강백의 '진땀 흘리기' 등 화제작이 포함돼 있다. 1993년작 '불의 가면'은 권위적 검열에 대한 '화풀이'로 5명의 출연 배우를 홀랑 벗겨서 장안의 화제가 됐다. 1979년 작 '난장이…'는 이듬해 재공연 때 '빨갱이 연극'으로 찍혀 '1주일만 하고 내린다'는 공연포기 각서를 쓴 끝에 올렸던 작품이다.
"서울시나 문예진흥원의 지원금 받아 공연도 해봤지만, 그것 때문에 나태해졌다 싶네요. 몸무게가 10㎏나 늘어난 걸 보면. 다시 야성으로 돌아가렵니다. 잡초처럼 강하게, 처음 연극하던 마음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겁니다."
내년 대학로극장의 채윤일 연출작은 이상의 '날개'(1월 3일∼3월 2일)를 시작으로 그리스비극 '엘렉트라'(3월 5일∼4월 5일), 김승옥 소설을 각색한 '무진기행'(4월 8일∼6월 8일), 이현화의 '산씻김'(6월 11일∼7월 11일), 까뮈의 '까리귤라'(7월 16일∼8월 31일), 이강백의 '영월행 일기'(9월 2∼30일)까지 6편이다. '진땀 흘리기'(4월 25일∼5월 1일)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1월 중순)은 각각 문예진흥원 예술극장과 연강홀에 올린다. '엘렉트라' '까리귤라' '무진기행'은 신작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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