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핵개발 계획 시인 이후 긴장이 고조되던 북미관계가 제네바 합의의 완전파기라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북한은 12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핵 동결을 해제하고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 시설의 가동과 건설을 즉시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북한은 담화문에서 '제네바 합의 파기'라는 용어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결국 북미 제네바 합의의 파기를 사실상 공식 선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제네바 합의 자체가 매년 50만톤의 중유 제공과 경수로 2기 건설 대가로 북한이 핵 동결을 하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핵 동결 해제 선언은 제네바 합의 파기 선언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체결이후 8년간 유지돼 온 한반도의 핵안전체제가 공식적으로 붕괴한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제네바 합의로 가동을 중단했던 영변의 5㎿ 흑연 감속로에 연료봉을 장전, 재가동 하기 위해선 2개월 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일단 협상을 위한 시간은 있다.
▶북한의 의도
북한은 담화문에서 가동과 건설 대상이 '전력 생산에 필요한 핵 시설'이라는 점을 명시, 핵 동결 해제의 목적이 미국의 중유 중단 조치에 따른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또 핵 동결 해제를 선언하면서도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폐연로봉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이는 핵 동결 해제가 곧바로 핵무기 개발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란 점을 내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은 담화문에서 "미국이 11월 14일 중유 제공 중단을 결정한 데 이어 12월 부터는 실제적으로 중유 납입을 중단했다"고 밝혀 일차적으로는 '중유 공급 중단'이 핵 동결 해제 선언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당초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이사회가 예정됐던 시기가 이맘 때라는 것도 북한의 담화 발표 시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그러나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이 일관된 입장이라는 점과 핵 시설을 다시 동결하는 것은 미국에 달려 있다는 점을 강조, 협상의 여지를 두었다. 이렇게 볼 때 중유 공급 중단 등으로 위기에 몰린 북한이 '핵 동결 해제' 카드를 꺼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벼랑끝 전술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전망
북한은 일단 영변 흑연로의 재가동을 준비하면서 미국의 반응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공'을 미국쪽에 넘긴 셈이 된 것이다. 그러나 북한 고농축 우라늄 핵 개발 계획 시인 이후 강경 압박책을 고수해 온 미국의 대응을 감안할 때 북한의 핵 동결 해제 선언은 한반도에 '핵위기'를 몰고올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반도에서 93∼94년 '핵위기' 상황이 재연되는 쪽으로 몰고 간 뒤 미국과 '일괄 타결'에 나설 계산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북한은 그러나 플루토늄 추출 수순 등 막다른 골목까지 나가지 않을 개연성이 높다.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폐연료봉의 봉인을 뜯고 국제원자력기구 사찰관을 추방하는 수순을 밟을 경우 미국의 타깃이 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진동기자 jayd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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