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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古典의 권위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죠" 日 "창조된 고전" 저자 하루오·스즈키 교수 방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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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古典의 권위는 국가에 의해 만들어졌죠" 日 "창조된 고전" 저자 하루오·스즈키 교수 방한

입력
2002.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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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읽거나 접한, 모범이 될만한 예술작품을 흔히 고전(古典)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상당수의 고전은 근대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1999년 일본 신요사(新曜社)에서 출간된 '창조된 고전'은 그런 내용을 담고 있다.이 책을 엮고 일부는 직접 쓴 미국 컬럼비아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부 하루오 시라네(51)교수와 스즈키 토미(鈴木登美·51)교수가 책의 국내 출간에 맞춰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이 책은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겐지이야기(源氏物語)' '만요슈(萬葉集)' '고킨와카슈(古今和歌集)'등이 19세기말 일본이 근대 국민국가로 발돋움하는 메이지(明治)시대에 일본 국민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고전으로 만들어졌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은 스스로를 다른 나라와 구별하는 한편 내적으로는 국가와 국민의 통합이 필요했는데 그것을 위한 구체적이고도 명시적인 방법이 바로 고전화 작업이었습니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한 대중적 공교육의 도입은 고전화 작업의 효율적 수단이었다. 당시 정부는 학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바탕으로 이 정도는 알고 읽어야 한다는 식으로 특정 도서를 교과서에 소개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일본도 옛 책은 내용, 주제가 고정된 게 아니라 시대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그러나 고전화 작업은 이를 한 가지로 고정시켰고 그 과정에서 과장, 왜곡도 뒤따랐다. 가령 '만요슈'는 8세기 나라(奈良)시대 천황 관련 시가를 주로 담고 있으며 그 때문에 다수 국민은 '나와 무관한 내용'이라며 외면했다. 그러나 고전화 작업을 거친 뒤에는 서민의 노래도 많이 담고 있어서 천황부터 서민에 이르는 일본인 전체가 읽어온 책으로 해석됐다. 천황과 민중을 엮는 국민 정체성 확립이라는 목표를 분명히 드러낸 셈이다.

8세기에 쓴 역사서 '고사기'와 '일본서기'는 메이지 시대에 그 가치가 역전된다. '일본서기'는 한자로, '고사기'는 한자의 일본식 문자인 만요가나로 각각 씌어졌는데 역사서로서는 '일본서기'가 더 높은 평가를 받았었다. 하지만 메이지 시대에 문자를 통한 국민 일체감 형성이 강조되면서 만요가나로 쓴 '고사기'가 교과서나 문학서 등에서 더 부각된다.

이 같은 고전화 작업이 일본에만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루오, 스즈키 두 교수는 "유럽에서도, 중국에서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랬을 가능성이 높지요. 어찌 보면 국민국가 형성 과정에서 국민정체성의 확립을 위해 대부분의 나라가 이런 억지 고전화 작업을 폈을지 모릅니다."

고전은 이미 그 가치가 공인된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은 그 가치가 어떤 목적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졌음을 이들은 강조한다. 그래서 고전도 비판적으로 읽고 수용할 것을 이들은 주문한다.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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