잣으로 만든 국수?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 영양가는 많지만 맛은 그저그런 음식이 떠오른다. 혹시 약으로 쓰이는 음식이 아닐까? 건강식품이라는 점에서는 맞지만 맛에 대해 섣불리 말하면 안된다. 잣국수는 모든 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주 맛있는 국수다. 다만 어디에서나 맛볼 수가 없을 뿐이다.경기 가평군은 질 좋은 잣을 많이 생산하는 곳. 군내 축령산에서 나는 잣은 식용은 물론 약용으로도 유명하다. 열량이 100g당 760㎉로 높고, 비타민 B군이 풍부해 자양강장제로 많이 쓰인다. 철분이 많아 빈혈에도 좋고 풍을 없애는 효능도 있다.
이렇게 좋은 잣을 생산하는 가평에 잣국수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은 1998년. 어린 시절부터 요식업에 종사해온 김덕수씨가 주인공이다. 김씨는 1994년부터 가평에 명지쉼터가든(031-582-9462)을 운영해 왔다. 초창기의 히트 음식이 기러기 요리. 독특한 재료와 맛으로 기러기 요리는 매스컴을 타며 유명해졌다. 그러나 당시 4인 기준 10만원의 기러기 요리로는 일반인을 끌어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가평의 특산품을 연계한 잣국수다. 잣을 갈아 국물을 끓이고 잣가루와 밀가루를 혼합해 면을 뽑는다는 것이 예상보다 쉽지 않았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다.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두 가지. 잣가루와 밀가루의 비율이 첫째였다. 비율이 맞지 않으면 죽처럼 풀어지기가 일쑤였고, 국수의 형태를 갖추면 잣의 향기를 느낄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절묘한 비율을 찾아냈다. 물론 영업비밀이다.
두번째는 완성된 국수에도 남아있는 잣의 느끼한 향이었다. 해답을 국수 바깥에서 찾았다. 바로 김치였다. 잣의 느끼함과 김치의 매콤함이 어울려 맛의 상승효과를 일으켰다. 그래서 잣국수에 나오는 반찬은 딱 한가지, 김치뿐이다.
우선 그릇째 들고 향기를 맡는다. 향기가 우아하다. 오이를 채썰어 올린 국수의 모습도 우아하다. 면발이 부드럽다. 김치에 함께 감아 먹는다.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에 남는다. 면을 다 먹고 국물을 마신다. 역시 고소하고 풍성하다. 귀족의 식사가 이럴 것이다. 다른 음식에는 커피 등 후식이 나오지만 잣국수는 그렇지 않다. 입안에 향기를 오래 담고 있으라는 의미다.
잣국수의 또 하나의 매력은 가격이다. 잣처럼 비싼 재료가 들어가지만 칼국수값인 5,000원이다. 그래서 잣값이 오를 때에는 많이 팔수록 손해를 보기도 한다. "아무리 재료값이 올랐다고 값을 막 올리면 되나요?" 김씨의 반문이다. 잣국수는 가평군의 향토지적재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권오현기자 k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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