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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하이브리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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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하이브리드 세상

입력
2002.1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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멧돼지와 집돼지를 교배해 생겨난 새끼 돼지를 하이브리드(hybrid)라 불렀다. 잡종 혹은 혼혈, 속된 말로 튀기라는 뜻을 갖고 있는 하이브리드의 전형은 노새다. 말의 암컷과 당나귀의 수컷을 교배해 만든 노새는 양쪽의 장점을 갖고 태어났다. 말처럼 힘이 세고 당나귀처럼 끈질기다.하이브리드가 판치는 세상이다. 하이브리드 카는 여러 모델의 특징을 섞어놓은 자동차다. 트럭과 버스, 승용차의 장점을 모은 미니밴이나 보트와 자동차를 결합한 수륙양용차 등이다. 최근에는 상이한 동력원을 함께 쓰는 자동차의 의미로 쓰인다. 전기배터리와 1,500㎤급 휘발유엔진을 병용하는 일본 도요타의 '에스티마'가 대중화를 기다리고 있다. 전기모터의 친환경성과 내연기관의 항속성(航續性)을 모은 것이다.

하이브리드 빌(bill)은 주식과 채권의 장점을 모은 유가증권이다. 확정배당이 보장되면서 변제순위에서 주식보다 앞선다. 주식처럼 공개거래도 가능하다. 은행 입장에서 볼 때 자기자본으로 인정되고, 유상증자 없이도 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수 있으니 '1석3조'다.

에너지 밀도가 낮은 태양열을 효율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집광형 태양전지나 태양열 컬렉터를 결합시킨 하이브리드 발전이 실용화하고 있다. 아날로그 컴퓨터와 디지털 컴퓨터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조합한 하이브리드 컴퓨터는 물론, 여드름 치료제가 섞인 화장품이나 발모촉진제가 함유된 샴푸에도 하이브리드라는 말이 붙는다.

비 생명체인 '물건'에서만 아니다. 하이브리드 쌀은 기존의 벼보다 병충해에 강하고 수확량도 월등해 세계 씨앗사업의 총아로 떠올랐다.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잡종과 변종으로 키워진 장미는 세계적으로 1만5,000여종이 퍼져 있다. 차(茶)나무를 접목한 것이 대표적이어서 하이브리드 티(tea)는 관상용으로 조립된 장미의 대명사로 쓰이고 있다.

타이거와 라이언을 부모로 삼은 라이거나 타이언이 탄생한 것을 보면 하이브리드 인간의 출현도 멀지 않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변종과 잡종을 보다 근본적으로 제조하는 일이 가능해졌다. 톰 크루즈의 눈매에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몸매를 조합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두뇌에 베토벤의 감성을 소유한 (유골을 찾지 못한 모짜르트의 천재성은 가미할 수 없겠지만) 멋쟁이도 나타날 수 있게 됐다.

꿈과 희망과 기대를 갖고 정치권이 하이브리드 작업을 시도하고 있다. 그러나 쪼개고 분해해서 자유롭게 조립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면 주의해야 한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다음 세대(F2)를 기약할 수 없는 '불임(不姙)의 하이브리드'가 된다. 열성인자의 발현 확률도 우성유전자의 그것보다 낮지 않다.

영국의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의 일화는 이런 점에서 지극히 예언적이다. 어느 날 약간 모자라지만 상당한 미모의 여배우가 그에게 추파를 던졌다. "선생님의 두뇌와 나의 미모가 합쳐진다면 우리 사이에서 대단한 인물이 나올 것입니다." 그는 대답했다. "당신의 모자라는 두뇌와 나의 못생긴 얼굴이 합치면 가관일 것입니다."

정 병 진 여론독자부장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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