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학은 처음부터 일종의 스캔들이었다."정년퇴임을 앞두고 10일 서울대 문화관에서 가진 고별강연에서 정진홍(鄭鎭弘·65)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종교학이 거쳐왔던 험난한 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1세대 종교학자 장병길(張秉吉·83) 교수의 뒤를 이은 그는 1980년대 이후 종교학을 신학 일변도로 치우쳐 있던 주변 학문의 자리에서 종교 현상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인문학의 지위로 끌어올렸다.
'종교와 문학' '종교와 예술' '신화와 역사' 등 문학적 수사로 채워졌던 그의 강의는 학생들 사이에서 명강의로 손꼽혀 왔다. 서울대 종교학과를 나와 미국의 대표적 종교사가 멀치아 엘리아데를 사사한 그는 99년 종교 분야에서 유일하게 위촉된 학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주요저서로는 '종교학 서설' '신을 찾아, 인간을 찾아' '죽음과의 만남' 등이 있다. 9일 서울 동부이촌동 자택에서 만난 정 교수는 차분하고 설득력 있는 어조로 평생 그가 정립하려고 했던 종교학의 방향과 정년을 맞은 소감을 얘기했다.
―'개별 종교에 대한 이해는 반쪽짜리 연구다, 종교현상 그 자체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일관되게 해오셨습니다.
"종교학 하면 전통 종교, 즉 불교 기독교 천주교 유교를 떠올리지요. 그러나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종교학의 서술범주는 전통 종교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문화 현상을 그 대상으로 삼았어요. 즉 문화현상을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이라는 두 개의 범주로 나누어 기술할 수 있다고 보았는데, 길가의 나무도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거룩한 상징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이죠. 종교는 이런 포괄적인 문화현상의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종교 대신 종교문화라는 용어를 고집해 왔습니다. '종교문화 이해' '한국종교문화의 전개' '종교현상의 인식과 해석' 등 책도 내셨고요.
"과거처럼 특정 문명에 하나의 종교만 있는 시대는 지났어요. '종교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가 온 것이지요. 하나의 종교만 얘기하는 언어로는 해결하기 힘든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신학 위주에 치우친 연구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기 위해 종교문화라는 용어를 사용했어요."
―종교학의 역사를 스캔들이라고 표현하셨는데요.
"종교는 믿는 거지 왜 알려고 하느냐는 정서로 인해 백안시 되었는가 하면 학계에서도 실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이성적 탐구를 시도한다며 신학의 아류 내지 딜레탕트적 관심 정도로 치부했지요. 그러나 종교학은 감히 인식의 대상일 수 없다는 사실이란 과연 무엇인가, 학문의 객체일 수 없기 때문에 인식을 의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현상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메타적 물음을 담고 있어요."
이러한 현실적 문제로 특정 종교를 전공하지 않은 후학들이 대학사회에서 제대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정 교수는 안타까워했다. 그는 퇴직 후 후배들을 위해 일체의 강의를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인문학이 위기라고들 하는데 젊은 학자의 연구 여건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문제예요. 계약교수 1년하고 내보내고 겸임교수로 적당히 부려먹는 식으로는 안 됩니다."
그는 한국전쟁 후 서구유학을 거쳐 학문토착화의 첫발을 디딘, 이른바 4·19세대다. 김윤식 백낙청 김진균 신용하 교수 등 동 세대의 잇따른 퇴임에 대한 의견을 묻자 "(우리는) 더 있으면 큰일날 세대"라는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학문은 절대로 계승되어서는 안 돼요. 우리 세대만의 인식으로 가능한 영역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었어요. 젊은 세대는 우리보다 더 많이 공부했고, 현실에 적합한 질문을 던지며 연구해 가고 있어요. 우리들이 외국 것을 이곳에 적용해보자는 차원이었다면 후배들은 우리 문화 맥락에서 모든 것을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기존 학자들이 후속 세대들을 위해 창조적 공간을 만들어주어야 합니다."
그 창조적 공간을 위한 자리 비움이 바로 은퇴라고 생각한다는 정 교수는 퇴임 후 소장 학자들의 연구 결과를 찬찬히 살펴보고 종교학과 출신의 소장 학자들이 모여 발족한 한국종교문화연구소(한종연) 이사장에 취임해 '백의종군'의 자세로 학문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