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강원 춘천시 신동면 팔미리 경춘선 복선전철화사업 7공구 현장. 강촌 제2터널 뚫기가 한창인 공사장 옆 야산의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잘린 채 눈과 함께 뒤범벅돼 있다. 참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아름드리 나무 5,000여 그루(2,000평)가 볼상 사납게 잘린 자리에는 역사(驛舍) 공사를 위한 골재가 위태롭게 쌓여 있다. 시공을 맡은 건설업체는 부족한 야적장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국책사업'이라는 간판을 내세워 밤새 임야보전지역을 허가 없이 벌목했다.인근 남산면 강촌리 일대 백양 터널 공사 현장 주변도 산 비탈을 가득 메운 자갈과 흙더미가 괴물처럼 버티고 있다. 며칠동안 내린 폭설에도 아랑곳없이 골재를 실은 덤프트럭이 굉음을 내며 쉴새 없이 질퍽한 도로를 오갔다.
주변 사찰인 백양사로 향하는 자전거 코스였던 이곳은 본래의 고즈넉함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주민들은 "이 곳 공사는 모두 불법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9년 완공 예정인 경춘선 복선 공사로 인해 춘천시 곳곳의 자연이 몸살을 앓고 있다.
부족한 공사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주변 밭과 산을 야금야금 훼손하는가 하면, 나무를 함부로 베내는 등 불법행위도 일삼고 있다. 이 때문에 공사장 주변 주민들의 물리적 정신적 피해도 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이 없는 실정이다.
팔미리 주민 함영래(咸英禮·73·여)씨는 "시도 때도 없이 쾅쾅 하는 소리에 집이 들썩거려 잠을 잘 수가 없다"며 "보상은 바라지도 않으니 제발 밤늦게나 새벽녘만이라도 발파 작업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소연했다.
김정림(金貞林·62·여)씨는 "마을 터가 분지라 바위가 깨져 생긴 미세먼지 구름이 빠져나가지 못해 목이 늘 아프다"고 불평했다.
올 여름에는 건설업체가 마을로 흐르는 개울을 막았다가 홍수피해를 우려한 주민들의 항의로 다시 물길을 트기까지 했다.
백양사 신도 진호찬(陳鎬贊·40)씨는 "절로 향하는 길이 온통 자갈과 흙더미에 묻히고, 집채만한 트럭들이 질주하는 바람에 신도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며 "국책사업이란 미명아래 귀한 자연경관을 이렇게 훼손해도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공 업체인 LG건설과 선산토건측은 "공사장 주변이 도시계획관리법에 묶여 있어 허가를 받으려고 해도 환경영향평가 등 절차가 까다로워 어쩔 수 없었다"며 불법적인 산림 훼손을 인정했다. 이들은 "일단 급한 김에 야적장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현재 허가를 받기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주민들은 "지속적인 감시와 단속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공사 내내 업체의 불법행위는 계속 될 것"이라고 걱정했다.
/춘천=글·사진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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