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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아랫목, 윗목

입력
2002.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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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년간 고통을 함께 견뎌내고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저력을 보여준 국민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산층과 서민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지만 충분하지 못해 안타까운 심정입니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진입 5주년을 맞아 김대중 대통령이 한 말이다. IMF 체제와 함께 임기를 시작한 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는 지난 5년이 그대로 담겨 있다. 고통을 이겨내 위기를 기회로 바꾸었지만, 중산층 이하는 더욱 어려워져 빈부 격차는 훨씬 심화했다는 것이다.이러한 현상이 세계적인 추세든, 잠재된 격차가 본격적으로 드러난 것이든지 간에 IMF 체제가 빈부 격차 확대에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우리 경제가 이만큼 회복된 데에는 서민들의 희생이 밑바탕이 됐다.

김 대통령은 1999년 초 국민과의 대화에서 '윗목 아랫목론'을 거론했다. 아궁이에 불을 때 아랫목은 훈기가 돌고 있으나 윗목은 여전히 찬 편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윗목도 데워진다는 것이었다. 불을 때면 아랫목이 먼저 따뜻해지고 곧 그 기운이 윗목으로 퍼져 방 전체가 더워지기를 정부는 기대했고, 그렇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아궁이에 불은 분명히 붙어 아랫목은 따뜻한데 그 온기가 윗목으로까지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불 자체가 약해서 였거나, 열 전달 체제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 정책에 잘못이 적지 않았다. IMF 체제 5년을 돌아보자. 초 고금리에서 시작해 벤처 육성 및 증시 부양, 저금리 유지 등으로 진행돼 왔다. 모두 경기의 불을 지피기 위해서 였고,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제한적이었다. 뜨거운 곳만 계속 뜨거웠다.

외환위기 초기의 초 고금리 정책은 IMF 강요에 의해 어쩔 수 없었다고 치자. 그 이후 불어 닥친 벤처 열풍을 정부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 시장이 옥석을 가려낼 수 있도록 유도하기 보다는 '벤처 기업 몇 개 육성'이라는 개발시대의 전략으로 일관했다. 엄청난 돈을 무차별적으로 쏟아 부었다. 그 결과 한탕주의가 만연하면서 개혁 의지는 빠른 속도로 희석됐고, 숱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 결정판이 각종 게이트였다. 그 파장으로 진정한 벤처마저 하루아침에 침몰했다. 꽃이 피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꼴이 됐다.

개인 신용 파탄이 우려될 정도의 가계 대출 급증과 부동산 투기의 재발도 마찬가지다. 재정 금융 정책이 처음부터 잘못됐다. 저금리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통화 정책은 지나치게 팽창적이었지만, 재정은 너무 긴축적으로 운영했다. 돈을 풀 곳과 조일 곳, 풀 시점과 조일 시점의 선택에 실패해 정책의 효과를 스스로 떨어뜨렸다. 이런 것들이 합쳐 부의 쏠림 현상을 가속화했다. 구조조정에도 아랫목 윗목은 분명히 있다. 기업 금융 노동 공공 등 4대 부문의 개혁 중 가장 처진 분야가 공공이다.

그 중에서도 '힘 있는' 부처는 거의 손을 대지 못했다. 얼마 전 한국행정학회가 발표한 내용이다. 반면 상대적으로 구조조정이 많이 이루어진 분야는 기업이다. 이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은 향상됐지만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거나 소득이 줄었다. 이렇게 형평이 맞지않다 보니 근로자들의 피해 의식은 날로 커졌다. 노동계가 갈수록 강경해지고, 노사 문제가 잘 풀리지 않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우리 경제에 대한 전망이 밝은 것은 아니다. 자칫하면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 자산 가격 급등 등은 인플레이션 위협이다. 이에 비해 한국은행과 일부 경제연구기관 들은 미국 등 세계 경제의 영향으로 국내 여건과는 관계없이 디플레이션 기조에 빠질 수 있다고 내다 봤다. 우리로서는 참으로 어려운 국면인 것이다. 지난 5년간 우리는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다. 이제는 그 과실을 챙겨야 할 때다. 어려운 때일수록 그것은 윗목도 따뜻해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상 호 논설위원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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