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인상주는 李 남배려 情깊어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 주변에서 조금은 그를 안다는 사람들은 "이 후보는 사람을 끄는 재주가 없는 편"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를 알 만큼 안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선뜻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감동을 주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이 후보가 뜻밖의 행동으로 남의 마음을 끌어 잡은 예를 든다.
16대 총선 개표일 때였다. 밤 10시가 넘어 관계자들이 선거 상황판에 당선 축하 장미꽃을 달려고 하자 당시 총재였던 이 후보는 "선대본부장(현 서청원·徐淸源 대표)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무슨 소리냐"며 이를 말렸다. 결국 밤 12시가 다 돼 서 대표의 당선이 확정되고 나서야 이 후보는 장미꽃을 서 대표 이름 옆에 가장 먼저 달았다. 1997년 당내 대선후보 경선 당시 반(反) 이회창 진영의 핵심이었던 서 대표는 이후 이 후보의 가장 든든한 지원세력이 됐다.
이 후보는 "인상이 차갑다"는 말도 흔히 듣는다. 많은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지만 "표현이 능하지 못해 그렇지 정은 깊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지난 주말 유세 버스 안에서 이 후보는 한 구석에 숨겨 놓았던 꽃다발을 꺼내 나경원(羅卿瑗) 특보에게 건넸다. "나 특보, 생일 축하합니다." 그리고는 생일 축하 노래를 선창했다. 나 특보는 눈물을 글썽거렸다.
이 후보는 웬만해서는 공개석상에서 아랫사람을 나무라지 않는다. 야단을 맞는 사람에 대한 나름대로의 배려다. 지난해 10·25 재·보선 얼마 전의 일이었다. 그는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한 홍준표(洪準杓) 의원의 출판기념회에 축사를 하러 갔다. 홍 의원의 저서에는 '이회창 불가론'이 실려 있었다. 이 후보는 출판기념회에서 홍 의원을 한껏 추켜 세운 뒤 이튿날 홍 의원을 따로 불러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따끔하게 꾸중했다.
그는 유머가 서툴고 어쩌다 하는 농담도 '썰렁한' 게 많다. 여고 일일교사때 '빠순이'란 말을 입에 담았다가 혼이 난 적도 있다. 그래도 꾸준히 우스갯소리를 하려고 애쓴다. 8월말 한 인기 탤런트와 닮은 출입기자를 국회에서 우연히 만난 그는 대뜸 "술 먹고 운전했어?"라고 물었다. 이 기자는 무슨 소린지 몰라 한참을 끙끙대다가 며칠 전 그 탤런트가 음주운전으로 입건됐다는 신문보도를 떠올릴 수 있었다. 또 의원 몇 명과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보러 갔을 때 술집에서 질펀하게 노는 장면이 나오자 "○○○의원이 언제 출연했어?"라고 물어 주위를 웃겼다. 그 의원의 한량 기질을 꼬집은 농담이었다.
지난 5월 대통령후보 수락 연설을 끝내고 갑자기 큰 절을 한 것이나, 시장을 돌다가 씻지도 않은 오이를 덥석 집어 입에 넣은 일 등은 그의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다. 노래를 잘 못하는 편이니 악기 연주라도 해서 국민에게 친근감을 주자는 주변의 건의로 색소폰을 배우다가 포기한 적도 있다. 깔끔하고 부끄러워하는 성격을 완전히 바꿀 수야 없겠지만 대중 정치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엿볼 수 있다.
/최성욱기자 feelchoi@hk.co.kr
■촌스런 이미지의 盧 IT탐구열 왕성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겉으로는 털털한 동네 아저씨 같지만 지적 호기심만은 누구 못지않게 왕성하다. 특히 정보통신 등 첨단 분야에 대한 관심은 호기심 차원을 넘어 집요할 정도이다. 주위에서는 "노 후보가 정치인이 되지 않았다면 과학자나 발명가로 대성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노 후보가 1974년 고향인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화부락에서 고시공부를 할 때 직접 독서대를 개발한 게 좋은 예다. 장시간 앉은 상태로 법학서를 읽다가 허리가 아파 고생했던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궁리한 끝에 허리를 굽히지 않고 바른 자세로 책을 볼 수 있는 독서대를 만들어 냈다. 한발 더 나가 자신처럼 고생하는 고시생들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당시 특허국에 출원, 특허를 받아 냈다. 한 측근은 "기본 원리에 대한 탐구열이 강한 게 노 후보 특징"이라며 "그가 정치에서 원칙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는 80년대 초 컴퓨터가 국내에 막 보급될 무렵 8비트 컴퓨터를 독학으로 배웠다. 13대 국회의원 시절인 90년대 초에는 직접 인명관리 소프트웨어를 개발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민주당 선대위 관계자는 "93년께 한 컴퓨터회사가 컴퓨터 통신 보급을 위해 단말기를 무료로 빌려줬을 때 노 후보가 국회에서는 가장 먼저 신청할 만큼 관심이 컸다"고 말했다. 그는 14대 총선 낙선 후인 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차릴 때 근거리통신망(LAN) 얘기를 듣고 사비로 9,000만원짜리 서버를 구입해 나중에 빚을 갚느라 애를 먹어야 했다.
노 후보는 또 '촌놈' 이미지와 달리 스포츠와 음악, 문학에도 상당한 소질이 있는 편이다. 그가 즐기는 운동은 요가 볼링 골프 등 다양하다. 최근 '주부들과의 대화'를 위해 볼링장을 찾아 몇 년 만에 볼을 잡고도 세 차례 연속 스트라이크를 터뜨렸다. 한 측근은 "노 후보가 16대 총선에서 떨어진 뒤 골프를 처음 배웠는데 근육의 각도까지 연구할 정도로 집요했다"고 말했다.
노 후보는 얼마 전 대학로에서 직접 기타를 치면서 '상록수'를 부르고 부산 유세 도중에는 '부산 갈매기'를 열창하는 등 노래에도 일가견이 있다. 노 후보가 고시 합격 후 한때 성악과에 다닐 생각도 했다는 게 주변의 얘기다. 글 솜씨도 간단하지 않다.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전전하던 20대 초반 그는 막노동판의 실상 등을 두 편의 단편소설에 담아내기도 했다.
외모에 크게 신경을 쓰는 것도 그의 감춰진 모습 가운데 하나이다. 이마의 굵은 주름살 때문에 보톡스 주사를 맞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 뻗치는 머리를 '죽이기' 위해 매일 손수 머리를 손질하는가 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몸을 씻는다는 부인 권양숙(權良淑)씨의 귀띔은 새롭다. 지난 달 1박2일 일정으로 지방의 한 절을 찾았을 때는 "절에서 머리 손질을 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며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겼을 만큼 그의 머리 손질은 유별나다.
/박정철기자 parkjc@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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