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는 문을 열고 한국민의 분노가 담긴 서명 용지를 받아라."7일 오후 1시 미국 워싱턴 백악관 북쪽 정문 앞. 미군의 장갑차에 깔려 숨진 여중생 2명의 억울한 사연을 알리기 워싱턴을 찾은 범대위 소속 대표단과 현지 동포, 미국 반전단체 회원 등 30여 명이 외치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부시는 한민족의 자존심을 짓밟은 데 대해 백배사죄하라." "우리의 반미는 국수적, 배타적 반미가 아니다. 평등하고 존중하는 상생의 반미다."
강추위 속에서 단식농성을 하며 꼬박 밤을 새운 탓이라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는 투쟁단의 외침은 거침없었다.
2일 방미한 이래 범대위 투쟁단은 미군 무죄 평결의 부당성과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의 필요성을 목청껏 외쳤다. 궤도 자국이 선명한 여중생들의 주검 사진이 담긴 피켓을 들고 맨해튼과 워싱턴을 누비고, 미국 언론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워싱턴의 폭설도 추위도 이들의 열정을 막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의 반응은 차가웠다. 구호는 반향 없이 흐르고, 6일 워싱턴 외신기자클럽 회견에는 AP 기자만이 자리를 지켰다. 미 정부에 항의 서명을 전달하려는 노력은 문전박대 당하기 예사였다. 백악관 앞 시위에선 동포 여교사가 경찰 폭행이라는 죄로 수갑이 채워져 연행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투쟁단을 당황하게 한 것은 미국인들의 시각이었다. 많은 미국인들은 "강간과 같은 범죄가 아닌 사고를 두고 왜 반미 운운하는가"라고 반문했다. "한국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우리의 젊은이들도 목숨을 바친다"고 항변하는 미국인도 있다. 한국에서 반미 주장이 더 거세질 경우 주한 미군 철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나온다.
이날 백악관의 굳게 닫힌 철문은 두 여중생의 죽음을 대하는 한국과 미국의 편차를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김승일 워싱턴 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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