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에는 서울대·연대·고대에 한해 100명 이상 합격했지만, 이제는 10명 보내기도 힘들어요. 학교의 보충수업·자율학습을 허용하기 전에는 강남 따라잡기는 불가능해요."(서울 강북 Y고 교사) "교육환경·학부모 교육열 등 때문에 지역별 학력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어요. 이제는 움직일 수 없는 대세로 자리잡은 것 같아요."(서울 강남 H고 교사) "매일 2시간씩 학원에 다니지만, 고액과외를 받는 강남애들과 비교가 되겠어요? 친구들도 강남애들 때문에 많이 불안해 하고 있어요."(서울 강북 S여고 2학년 학생) "하위권 학생도 과외 받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해요. 한 반에 절반가량이 진학을 포기하는 강북학교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요."(서울 강남 K고 2학년 학생)'교육 특구 강남'공고해져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 사는 윤모(49·주부)씨는 아들에게 큰 죄를 지은 것 같은 마음을 아직도 지울 수가 없다. 성북구 K고에서 전교 1∼2등을 놓치지 않던 아들이 지난해 입시에서 서울대를 떨어진 후 서울 중위권 대학에 특차 합격해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윤씨는 "강북학교의 수준차를 알지 못한 채 안일하게 입시 준비한 것이 원인"며 "무리를 해서라도 강남에서 학교를 보냈다면, 무난히 명문대에 합격했을 텐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서울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89개 군(郡)중 서울대에 5명 이상 진학시킨 군은 단 8개 뿐이었으며, 중소도시 74개중에서도 절반 가량이 서울진학 학생수가 5명을 넘지 못했다 또 이 같은 지역별 학력격차는 점차 세분화돼 서울 대 지방도시, 서울 대 수도권, 지방 지역간으로 확산되고 있다. 교육에 있어서 지역간 학력편차가 고착화해가고 있는 것이다.
공교육 붕괴가 강남을 띄운다 흔히들 서울 강남학생이 공부를 상대적으로 더 잘하는 이유로 '우수한 교육여건' '높은 교육열' 등을 꼽는다. 하지만 많은 교육전문가들은 강남이 '교육특구'로 자리잡은 것은 공교육 붕괴와 궤를 같이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0월 본보가 '강남 고3교실 개점휴업'(10월28일 29면)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입시 마무리를 위해 고3학생들은 오전 수업만 마치고 학원으로 몰려간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후 뒤늦게 실태파악에 나선 서울시교육청이 단축수업을 금지시키자, 시교육청 홈페이지에는 "학원에 못 가 대학에 떨어지면 교육청이 책임 질 거냐"는 강남지역 수험생과 학부모의 글이 빗발쳤다. 결국 강남이 '우수한 교육여건'을 갖췄다는 것은 단지 '고액과외 학원'이 많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웃지 못할 예이다.
공교육 손 발 묶는 교육당국 서울 강북 K고의 진학담당 교사는 "지역별 학력격차는 결국 영어·수학 과외가 밀리기 때문"이라고 단언한다. 일선 고교의 경우 교육당국의 지시에 따라 보충수업이나 자율학습 등을 실시할 수 없기 때문에, 강남의 과외열풍을 공교육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사설기관의 모의고사도 금지했기 때문에 학생들의 객관적 수준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과거 공립 명문교 Y고의 진학담당교사는 "같은 강북지역의 학교라도 사립계 고교는 비공식적으로 보충수업과 자율학습을 실시하고 사설기관 모의고사도 보기 때문에 교육청 지시대로 학생을 지도해야 하는 국·공립계 고교보다 진학률이 더 높다"고 전했다. 결국 '고교교육 정상화'라는 명목으로 사설입시기관의 난립은 막지 못한채, 일선 고교의 진학지도만을 규제하는 교육당국의 정책이 '공교육 붕괴 →사교육 번창 →강남 교육특구화'의 악순환을 조장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대해 교육인적자원부 관계자는 "별도 수업료를 내는 학교의 보충수업이나, 강제적 자율학습은 공교육을 사교육화 할 우려가 있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김명수기자 lecero@hk.co.kr
■ 대진고의 사례
'올해 수시합격 서울대 3명·연세대 6명. 2002학년도 서울대 합격 15명 연·고대 40여명.'
서울 노원구 하계동 대진고가 최근 대입에서 거둔 성적이다. 물론 서울대와 연·고대 합격률이 고교교육 성패의 잣대일 수는 없다. 하지만 중학교 성적우수자들이 대부분 특수목적고와 강남학군으로 쏠리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대진고의 명문대 진학률은 강북의 고교에서는 수위를 다투는 성과다.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다만 약간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학교규율을 엄하게 세우면서, 하위권 학생도 중도포기 하지 않도록 격려해 면학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이 학교 진학담당부장 정하근(鄭夏根·47) 교사의 말이다. 정 교사는 "그러나 요즘 세태에서는 이런 교육상식마저도 지켜나가기가 쉽지 않다"고 씁쓸해 한다. 교사와 학교를 못 믿는 교육당국과 학부모, 사설기관 모의고사 금지·보충수업 제한 등 규제위주의 교육정책 때문이다.
대진고 신입생 중 평균 5∼6명은 1학기 중 전학 등으로 학교를 떠난다. 회초리 한번 맞지 않고 초·중교를 다닌 학생들이 엄한 분위기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 이 고비를 넘기면 중도탈락생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대진고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강남은 물론이고, 주변학교 보다도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사교육을 받는 학생들도 상대적으로 적다. 이에 따라 학교는 자체 개발한 교재를 사용해 논술·구술면접 교육을 시키는 등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산업공학전공에 합격한 이영훈(李映勳·18)군은 "주로 학교 자율학습실에서 공부해왔는데, 선생님들의 엄한 감독 덕분에 순간순간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며 강남으로 과외공부를 다니는 시간에 대신 스스로 문제 하나 더 푸는 것이 효율적이었던 것 같다"고 말하며 활짝 웃었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서울大 "10% 지역할당제 공감대"
"역차별 방지장치를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관건이다." 서울대 입학관리본부 관계자의 말처럼 서울대의 지역할당제는 일부 제어장치만 완성되면 곧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난다.
10월부터 단과대별 교수 10여명으로 구성된 입시 관리 개선팀이 마련한 '지역할당제 연구보고서'가 이르면 올 연말, 늦어도 내년 초께 입학관리본부에 제출된다. 입학관리본부는 이 안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시행시기, 방안 등에 대한 '잠정안'을 확정, 본부에 보고한다. 잠정안은 공청회와 같은 여론수렴 절차를 거쳐 내년 상반기 중에 '최종안'으로 확정돼 교육부에 전달될 예정이다.
지역할당제 잠정안이 확정되면 가장 큰 논란을 일으킬 사안은 단연 선발 방식이다. 선발범위는 학력저하를 막기 위해 시행 첫 해 입학정원의 10%인 400명 정도를 선발하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어느 정도 형성돼 있는 상태. 시행시기도 7차교육과정 대상자가 첫 대학에 들어오는 2005학년이 무난하다는 의견이 다수다. 그러나 선발방식은 3일 열린 제7회 '관악교육정책포럼'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 서울대 윤정일(尹正一·교육학과) 교수는 "전년도 신입생을 기준으로 삼아 전국 232개 시·군·구 지역 별로 신입생이 없는 지역에 4명, 1명 입학한 지역은 3명 등 할당 인원을 차등 배분하는 방법"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 수원대 강인수(姜仁壽·교직교양과) 교수는 "서울대 입학생을 기준으로 삼을 게 아니라 인구비례 전체 대학생 비율이 낮은 순서대로 배치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정원수기자 noblelia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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