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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36)忍苦의 역사 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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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릉 숲에서 보내는 편지](36)忍苦의 역사 나이테

입력
2002.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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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무. 노래가사에 나오는 말이지만 요즘 매일 바라보는 대상입니다.겨울나무는 섬세하거나 투박한 가지들이 때로는 너무 조형적이고 때로는 너무 자연적이고 자유롭게 배열돼 감탄을 자아냅니다. 쓸쓸한 마음으로 보면 한없이 허전하고 애처롭지만, 같은 나무라도 곧게 보면 한없이 의연합니다.

겨울을 견디는 나무만이 갖는 특권은 나이테입니다. 나무라고 모두 나이테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나이테란 봄부터 여름까지 세포분열이 활발해 나무가 쑥쑥 자라는 시기에는 목재의 색깔이 연하고 폭도 넓다가, 가을부터 겨울을 견디는 동안에는 아주 천천히 자라나 조직이 치밀해지고 색깔이 진하며 폭도 좁아져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러니 겨울이 없다면 나무에게 제대로 된 나이테가 생길 수 없습니다.

나이테는 그 나무가 살아온 역사를 말해주기도 합니다. 나이테가 생겨나는 간격, 색깔, 흔적 같은 것을 가지고 학자들은 그 지역에 언제 가뭄이 들고 산불이 났는지, 혹은 곤충의 침입을 받았는지를 추정합니다. 크게는 기후가 어떤 주기를 가지고 변화하는지를 예측하고, 생활 속에선 남북 방향에 따라 햇볕을 받는 양과 나이테의 간격이 다른 것을 이용해 나침반처럼 방향을 짐작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많이 자란 쪽이 남쪽입니다.

그런데 나이테를 정확히 보며 세월의 흔적을 읽어내려면 나무를 잘라야 한다는 사실이 기막힙니다. 살아있는 동안 역사를 평하기 어려운 것과 마찬가지인가요? 나무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생장추라는 기구를 가지고 나무줄기에 작은 구멍을 뚫어 긴 원통막대 모양으로 나무편을 뽑아내어 보기도 하지만요.

세월을 살면서 허송하지 않고 잘 쌓아온 이들을 두고 연륜이 있다고 합니다. 나이테를 말하는 것이지요. 나무의 삶이나 우리의 삶이나 좋고 편안한 시간들과 어둡고 힘든 시간의 반복으로 이루어지는 것인가 봅니다. 오늘, 이 겨울나무들의 나이테를 보면서 대견한 것은 모진 겨울에도 나무는 더디지만 자라고, 그 세월 속에서 더욱 견고해진다는 사실입니다.

한 해가 서서히 끝을 향해 갑니다. 혹 지난 시간들이 너무 힘겹다고 느껴지는 분들이 계시다면 추운 겨울 끝에 다시 찾아오는 좋은 시간들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세월을 겪어낸 나무들만이 큰 그늘을 드리우는 아름다운 나무로 커간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시고 남은 시간을 잘 마무리하시기 바랍니다.

이 유 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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