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이란 무엇입니까." 소설가 김탁환(34·사진)씨는 역사 추리소설이라는 옷을 입은 장편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동방미디어 발행)에서 이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서포(西浦) 김만중(1637∼1692)의 말을 빈 대답은 명료하다. "공맹의 가르침보다도 한 인간의 고뇌가 소중하다고 보네. 그 많은 성현의 가르침도 따지고 보면 인간을 돕기 위한 방편일 따름일세. 자네는 소설을 지을 때 이건 누구의 가르침입네 이건 누구의 도리입네 미리 생각하는가?"김씨는 역사를 통해 현실을 반추하는 데 힘을 기울여온 작가다. '서러워라…'는 17세기 조선 숙종 시대 모독이라는 소설가가 남해에서 유배 중인 김만중을 찾아가서 나눈 대화이다. 두 사람의 대화의 끈은 김만중의 소설 '사씨남정기'이다. 모독은 김만중이 짓고 있는 '사씨남정기'를 훔쳐오라는 장희빈의 명을 받은 터였다. 이 소설은 가장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본처를 모함하는 악첩을 그려서 장희빈이 중궁전을 모함한다는 혐의를 담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그러나 모독은 김만중과 대화하며 끝내 소설을 가져가지 못한다.
작가는 모독이 소설문학의 선구자인 김만중과 시간을 초월해 나눈 대화를 통해 소설의 존재 이유를 탐색한다. '사씨남정기'가 정치적인 상황을 지나치게 직접적으로 빗댄 것이 아니냐는 비판에 김만중은 이렇게 답한다. "그렇게 해야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욱 분한 기운을 불러일으킬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내겐 나의 소설이 나의 무기일세." 이는 김탁환씨의 소설관이다. 그는 옛 그릇을 집되 그 속에 오늘을 담는다. 문학이 지금 이곳의 현실을 칼같이 비판하고 나아가야 할 바를 알리는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새롭게 일깨운다.
'서러워라…'에서 장희빈은 어렸을 적 끼니를 거르며 아낀 쌀로 소설을 빌려 읽었다. 그 때는 그렇게들 소설을 사랑했다. 밤을 새워 일일이 소설을 베꼈던 17세기 필사본 시대를 묘사하면서 작가는 "그 시절 소설은 단순히 몇천원짜리 상품이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소설에 대한 지독한 사랑을 확인한 작가는 이제 18세기 방각본 소설 시대, 개화기 활자본 소설 시대로 이어지는 소설 3부작을 출간할 계획이다.
/김지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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