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IMF) 체제에 진입한 지 2년이 지난 1999년 12월 초, 40여명의 중진 경제학자들이 모여 심포지엄을 열었다. 주제는 'IMF 경제위기와 한국 경제학의 반성 및 과제'였다. 심포지엄에서 중점적으로 토론된 내용은 한국 경제학의 무국적성과 취약성으로, 결론은 한국 경제학이 우리의 현실을 분석하고 예측하며 해결책을 내놓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이에 앞서 경영학자들도 모임을 갖고 같은 내용의 반성을 했다.■ 그로부터 3년 후인 2002년 9월 중순, 한국경제학회는 창립 5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엔 국내 경제학 교육의 문제점을 짚어보았다. 이 모임에서는 "우리의 경제 현실은 급변하고 있는데 강의실에서는 수십년 전 외국 경제학 이론만 답습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배우는 경제학 원론은 사회 진출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추상적인 내용 뿐"이라는 등의 지적이 있었다. 한마디로 경제학 교육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 서울대 경영대가 지난달 말 한국기업경영사 연구원의 문을 열었다. 한국적 경영이론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초대 원장인 신유근 교수는 '정(情)의 경영'을 특히 강조했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이 외국 직원들의 경조사를 챙겨주고 야유회 같은 단체활동을 하면서 신뢰를 얻고 있는데, 이러한 특성은 글로벌 스탠더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세종이 집현전 젊은 학자들에게 1∼6개월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했던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는 한국형 안식년 제도라고 주장했다.
■ 국내에 경제학·경영학 박사는 넘쳐날 정도로 많다. 우리 사회가 이들의 능력을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정도다. 또 경제학과 경영학이 이 땅에 들어온 지도 오래됐다. 더욱이 우리의 압축적인 경제성장은 더없이 좋은 연구 대상이다. 그런데도 과문한 탓인지 경제학자와 경영학 교수는 많아도 아직 한국적 경제학이나 경영학이 등장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 IMF체제 초기에 나왔던 이야기들이 몇 년 후에도 그대로 되풀이되고 있다. '학문에는 국경이 없다'는 말을 우리 학자들이 너무 신봉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상호 논설위원 s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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