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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막심 고리키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 "그의 표현은 놀랄만큼 단순하면서 의미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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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 막심 고리키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 / "그의 표현은 놀랄만큼 단순하면서 의미깊어"

입력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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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 젊었을 때 오입을 많이 했었나?"이렇게 상스러운 말을 쓰다니, 막심 고리키(1868∼1936)는 어이가 없었다. '대문호'라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를 만한 것이었다. 낯빛 하나 바꾸지 않고 물어보는 레프 톨스토이(1828∼1910) 앞에서 안톤 체호프(1860∼1904)는 쩔쩔매다가 눈을 내리깔고 대답했다. "지칠 줄 몰랐죠." 그 순간 고리키는 깨달았다. 그가 말할 수 없는 단순함으로 그런 말투를 쓴다는 것을. 그의 텁수룩한 입술에서 나오는 그런 말들이 지극히 자연스럽다는 것을, 조금도 음탕하지 않다는 것을. 그가 입에 담을 수 없을 것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오직 그것만이 정확한 표현이어서 그랬다는 것을.

'톨스토이와 거닌 날들'(우물이있는집 발행)은 고리키가 30대에 만난 톨스토이를 회상하면서 남긴 기록이다. 1901년 1월16일 70대의 노작가 톨스토이는 고리키와 처음으로 만난 뒤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마음에 든다. 마치 민중 속에서 나온 듯한 사람이다." 바로 그날 톨스토이의 집에서 나온 고리키는 문우 체호프에게 달려갔다. "그가 표현한 모든 것은 정말 놀랍도록 단순하면서도 깊은 뜻이 있었어요. 하나의 완전한 오케스트라와 같았어요!" 종교와 사랑의 정신을 위대한 문학으로 승화한 작가와, 자신의 필명대로(막심 고리키는 '가장 고통스러운 자'라는 뜻이다) 고통받는 민중을 위한 문학을 세운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짤막한 단상이 이어지는 글모음은 정돈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만큼 진솔하다. 고리키가 보기에 톨스토이는 별난 사람이었다. 술 취한 여인이 도랑에 쓰러져 더러운 물줄기를 온 몸에 뒤집어쓴 것을 보고 너무나 슬펐다면서 훌쩍거렸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그 여자를 만진다면 한 달 내내 손때가 지지 않을 듯 싶어서" 슬퍼하면서도 손을 내밀지 않았다는, 어린아이 같은 사람이었다. 때로 거침없이 "여인의 몸은 남자보다 더 정직하다. 그러나 여인의 마음은 거짓말을 한다"고, 때로 다사롭게 "농부는 시인이다. 진정한 시는 마치 새의 노래처럼 영혼에서 흘러나온다"고 얘기하곤 했다.

톨스토이는 주로 신과 농부, 여자에 대해서 말을 하면서도 문학은 마치 생경한 주제인 양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작가로서 그는 '길가의 돌부리'와 같았다고 고리키는 회고한다. "사람들은 길을 가다 그것에 걸려 넘어진다. 심지어는 깊은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런 사람이 없어도 잘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돌부리 같은 사람에 걸려 넘어져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혹은 전혀 다른 세계를 보고 놀라는 것은 즐겁다." 한 위대한 작가에 대한 또다른 위대한 작가의 통찰이었다.

농민의 삶을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인 톨스토이가 민중에 깊은 애정을 가진 고리키를 아꼈던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이 두 거장은 피가 달랐다.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톨스토이와 노동자 출신 고리키의 길은 어느 순간 갈라졌다. 19세기와 20세기가 교차하는 지점이기도 했다.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두 사람은 더 이상 얼굴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오랫동안 서로에게 특별한 의미였던 것 같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 톨스토이는 "내가 지금 고리키에게서 무언가를 못 보고 지나갈까 걱정이다"라고 적었으며, 그가 세상을 떠난 뒤 고리키는 한 소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위대한 작가로서 톨스토이는 항상 우리와 함께 살아있단다"라고 적었다.

/김지영기자 kimj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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