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커닝햄의 소설 '시간(The Hours)'이 같은 제목의 영화로 제작돼 크리스마스 개봉을 앞두고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 1998년 출판된 이 소설은, 다음해 소설가 최고의 영예인 펜 포크너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 이미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적이 있다. '시간'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면서, 주인공들의 삶과 울프의 삶, 그리고 울프의 작품이 절묘하게 얽혀 있어 '댈러웨이 부인'에 대한 관심까지 새롭게 높이고 있다. '시간'은 1941년 버지니아 울프가 강물에 몸을 던져 자살하는 것으로 시작해 현대를 사는 두 여성의 삶으로 옮겨가고, 울프를 포함한 세 여성의 삶을 넘나들며 이야기를 펼친다.클래리사 본은 1990년대 뉴욕에 살고 있는 문학 편집인으로, 명망있는 시인이지만 에이즈로 투병중인 친구 리차드의 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는 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로라 브라운은 1949년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는 가정주부로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면서 세 살 난 아들과 함께 남편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고 있고, 1923년 런던 교외에서 '댈러웨이 부인'을 쓰고 있는 버지니아 울프 역시 언니의 방문을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제목이 말해주듯 소설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면서 서로 다른 삶의 문제들을 갖고 있는 세 명의 여성들이 무언가를 준비하며 보내는 '시간'을 설득력 있게 그린다. 여성들이 타인을 위해 소비하는 시간 속에서 정체성, 타인과의 관계, 책임, 일, 자유 등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내면을 다루는 것이다. 울프는 여성 내면의 표현을 위해 새로운 문학적 기법을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한데, 커닝햄 역시 섬세하고 서정적이면서도 명료하고 강렬한 문장으로 현대 여성의 내면을 묘사하는데 성공했다. 또한 울프가 인간의 양성적인 측면을 탐구했던 것처럼 여성들의 양성애적 성향을 관용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성 정체성을 쟁점화하기보다는 좀 더 깊이있는 인간 본성의 탐구에 성공하고 있다.
미국에서 울프는 페미니스트의 여신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의 문학이 페미니즘과 여성의 삶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다. 특히 1990년대 이후 다양한 성 정체성 논의가 확대되면서 울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지고 있는데다가 책에서 묘사된 양성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이 현대의 시각에 맞도록 표현된 것이 책을 성공으로 이끈 주된 이유라 할 수 있다. 사실상 버지니아 울프 다시 읽기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은,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며 자라온 현대 여성들이 각기 다른 종류의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지만, 울프를 통해 연결돼 있고 또 얼마나 같은 삶을 살고 있는가를 보여준다.
박 상 미 재미 번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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