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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학원사 "아문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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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움직인 이 책] 학원사 "아문센"

입력
2002.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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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4학년때인 1963년, 서울 이태원초등학교 근처에 있는 간판도 없는 작은 문방구에서 우연히 헌 책 한 권을 샀다. 당시 우리는 간판도 없는 그 문방구를 싸구려 문방구라고 불렀다. 문방구는 다른 문방구보다 학용품 값도 싸지만 한쪽에 쌓아 놓은 헌 만화책을 1원만 내면 하루 종일 볼 수 있어서 더 좋았다. 나도 어느새 그곳의 단골이 돼 있었다. 하루는 만화를 고르는데 '아문센'이라는 헌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학원사에서 발행한 세계위인문고 60권 가운데 한 권이었는데 주인 아저씨는 정가가 30원인데도 조금 헐었다며 5원에 주셨다.집에 와서 읽은 뒤 세상에 이런 탐험의 세계가 있구나 하는 것을 처음 알고서 흥분했다. 그 뒤 수도 없이 읽어 40여년이 지난 아직도 아문센이 남극점 도달시 함께 갔던 부하들의 이름을 기억할 정도다. 책에서 아문센은 극지 탐험가 프랭클린을 존경했기 때문에 나는 프랭클린 위인전을 구입해 읽었는데 탐험 이야기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문센이 존경했던 영국 탐험가 존 프랭클린이 아니라 미국 독립운동가 벤자민 프랭클린에 대한 책이었다.

아문센을 읽기 전 나는 막연하게 전투기 조종사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서 나중에 아문센 같은 탐험가가 되기로 굳은 결심을 했다. 아문센이 어릴 때부터 극지 탐험가가 되기로 결심하고 노르웨이의 추운 겨울에도 밤에 창을 열고 잤다는 글을 읽고 나도 한겨울에 털모자나 귀가리개를 하지 않고 다니다 양쪽 귀가 동상에 걸린 적도 있었다. 외할머니는 "아문센인지 어문센인지 하는 사람 때문에 우리 손자가 동상 걸렸다"며 한숨을 내쉬셨다.

그러나 내 꿈은 몇 년 뒤 바뀌었다. 아문센이 있을 당시에 이미 남극, 북극에 인류가 발길을 내 디뎠는데 내가 크면 지구 곳곳을 이미 다른 사람들이 탐험하게 될 것이라는 걱정때문이었다.

어른이 돼 이건산업에 입사한 나는 1980년 회사 일로 남태평양 솔로몬 군도에 출장을 가 그곳 사업이 회사에 유익하다는 것을 확신하고 경영진을 설득, 대규모 조림사업을 포함한 목재사업을 시작해 20년 이상을 남태평양에서 보냈다. 비록 어릴 때 아문센의 뒤를 따라 가보고 싶던 극지는 아니지만 현지인 인부와 함께 울창한 정글을 헤치고 조그만 카누에 식량과 나침판만 가지고 남태평양 바다를 가로지르면서 어린 시절 탐험가의 꿈을 일부나마 이룰 수 있었다.

권 주 혁 이건산업 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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