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 문제 하나. 다음 중 아줌마하면 떠오르는 것을 3개 이상 고르시오.(보기) ①부동산 투기 ②퀴즈왕 ③치맛바람 ④다이어트 ⑤보톡스 주사 ⑥사법고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① ③ ⑤번을 골랐으리라. 중국산 다이어트 약 먹고 사망한 40대 주부도 있었으니 ④번도 정답에 넣어줄까. 그렇다면 아줌마와 가장 거리가 먼 것은 퀴즈왕과 사법고시? 네, 틀렸습니다 라고 말한아줌마가 최근 두 사람 있었다.
우선 KBS 일요일 아침 프로 ‘퀴즈 대한민국’에서 3주 연속 승리를 거둔43세의 전업주부 이유미씨. 군살이 적당히 붙은, 동네 슈퍼에서 흔히 마주칠 것 같은 그녀가 이미 1승을 거둔 서울 법대생과 마주 섰을 때 솔직히‘아유 어쩌나’ 싶었다. 법대생의 표정도 여유만만.
하지만 그녀는 긴 영어 리스닝 문제까지 척척 맞춰 법대생의 얼굴을 하얗게 만들었다.
두 번째 상대는 서울 의대생. 대한민국의 내노라는 수재들과 마주선 이유미씨는 지구과학에서 시사상식, 국어문제까지 일사천리로 풀어내 상대방과시청자를 놀라게 했다. 세 번째 상대인 직장인은 그야말로 여유있게 눌러버렸다.
또 한 사람의 주인공은 올 사법고시 합격자 중 최고령을 기록한 48세의박춘희씨다. 그녀의 나이가 주는 의미가 무엇보다 신선했다. 최연소 합격자(역시 여성이다)가 21세라니 꼭 딸내미 또래 학생들과 실력을 겨룬 셈이아닌가.
한번 슥 읽기만 해도 머릿속에 한자도 빠짐없이 입력되는 20대 초반. 하지만 40대 후반이란 어떤 나이인가. 영어 단어는 외워도 외워도 깜깜이고, 두 세 번 읽은 대목도 영 생소하기만 하다. 하물며 그 많은 법전을 머릿속에 구겨 넣어야 하는 사법고시임에랴.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이 화제를 꺼내며 ‘대단하지 않니, 너무 신선하지않니’ 호들갑을 떨자 한 친구가 점잖게 한마디 한다. “얘, 대한민국 최고의 작가로 꼽히는 박완서씨는 등단할 때 마흔의 전업주부였어. 그리고어떤 감독이 자기가 만난 여배우중 최고 몸매는 40대 초반의 이미숙씨라고하더라. 아줌마들의 내공을 너무 우습게 보지 마”.
하긴 도올 김용옥씨의 도덕경 해석을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라며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까지 펴내 화제가 됐던 논객 이경숙씨도 무명의 40대 아줌마였다.
사법고시 최고령 합격자인 박춘희씨에게 묻고 싶어졌다. 무엇이 가장 힘들었느냐고. 혹 ‘난 너무 늦었어’라는 스스로의 자격지심은 아니었을까. 기억력보다, 풋풋한 나이보다, 생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이해, 그리고억척같은 의지가 더 큰 무기임을 증명한 그녀가 몇 년 후 푸근하면서도 유능한 법조인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서기를 고대해 본다.
/이덕규(자유기고가) boringmo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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